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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프롤로그

외롭고 싶지 않아

지하철은 매일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그렇듯 소음이 함께다. 이어폰을 잠시라도 빼면 지하 철도를 밟는 전철 소리에 세상이 무너질 듯하다. 출, 퇴근 시간이면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 데도 지하철에는 지하철이 오고 가는 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외엔 소음이 없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기다리며 자살이나 사고를 예방하면서 동시에 광고판 역할도 하고 있는 세이프 도어를 응시한다. 몸매 좋은 여자들이 뽐내고 서있는 패션 브랜드 광고나 성형 관련 홍보물, 운동으로 자신을 바꾸라는 광고들이 있다. 


지하철을 탄 후에도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다. 닭들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 양계장의 형광등처럼, 지하철에도 시퍼런 형광등이 쨍하게 켜져 있다.  사람들은 형광등의 날카로운 빛을 피해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휴대폰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즐긴다. 어제 보지 못한 드라마를 보거나 웹툰을 본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본다. 전보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은 더 많이 아는데도 감정적으로 더 친근하거나 가까워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인스타그램을 볼 때면 나보다 더 행복한 남들의 삶에 오히려 더 거리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2000년대 초반 지하철은 패륜철이라고 불렸다. 그 때는 노인과 젊은이 간의 싸움이 많이 일어났기때문이다. 이제는 패륜철을 넘어 모든 갈등의 집합소인 것만 같다. 몇몇 남자들은 여자들의 다리와 치마 속을 찍어 남초 커뮤니티에 올리고, 몇몇 여자들은 분홍색 임산부 좌석에 앉은 남자들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시끄럽게 우는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아이를 달래지 않고 가만히 두는 아줌마에게 ‘맘충’이라고 비하한다. 갈등이 심화될수록 그 갈등에 휘말리지 않도록 우리는 조용히 자신의 공간을 지키려고 한다.


지하철에서 아무리 신경 써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려고 해도 남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다. 누구는 지하철은 서로가 무슨 짓을 해도 서로에게 신경 쓰지 않는 그야말로 군중 속의 고독의 공간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지하철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빠르게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지나갈지라도, 타인의 눈에 잠시 동안 머무는 나의 모습을 나는 지독하게 신경 쓰게 되었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시선에서 자유롭기가 힘들었다. 나의 옷이 너무 튀지 않게 충분히 평범한지, 나의 몸은 남들에게 뚱뚱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는 몸인지, 나의 얼굴은 충분히 예쁜지를 매번 걱정했다. 


사람들은 남들보다 예뻐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는 세상의 평균적이고 평범한 얼굴과 몸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니까 무리에서 소외당하지 않고, 무리에 잘 섞여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외모에 좋음과 좋지않음을 나눠 놓고 나를 좋지 않음으로 분류한 뒤 끊임없이 나에 대해 비하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친하게 어울리던 4명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시험 기간에도 함께 밤을 새며 공부를 했고 성적은 엉망이었다. 공부는 안하고 말그대로 중앙도서관에서 밤만 새며 이야기 꽃을 피워서였다. 우리는 공부 하는데 성적이 안나온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밤 새느라 고단했던 시험이 끝나면 같이 소풍을 갔다. 생일은 꼭 4명이 함께 보냈다. 선물을 주고 받고 케이크를 자르고 밥을 먹었다. 고민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함께 나누고 해결방안을 같이 찾았다. 해결방안을 찾는 일은 즐거웠다. 모든 문제가 우리에게 낯설고 처음이었기때문이다. 


서로에게 하지 못할 말은 없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외로운 마음을 이 친구들이 메워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를 이어주던 끈도 상황이 변하면서 점점 느슨해졌다.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모두 남자친구가 있었다. 나는 이제 친구들의 얘기와 문제가 시시하고, 재미없었다. 친구들은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얘기하고 나는 남자친구를 못사귀는 루저였다. 나는 내가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루저라는 자괴감, 친구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답답함, 세상에 혼자인 것만 같다는 고독감이 몰려왔다. 나는 소외를 당했다고 생각했고 친구와 함께 있었음에도 외로움이 몰려왔다.


나는 왜 남자친구가 없을까?를 수도 없이 고민했다. 비슷한 성격, 비슷한 가정 환경, 비슷한 나이인데 왜 나만?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지만 나는 내가 충분히 예쁘고,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선택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또는 예쁘고,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남자들이 구애를 끊임없이 하지 않고, 그래서 선택할 여지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똑 같은 말이다. 그냥 나는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없고, 그 결과로 자격지심이 생기자 친구들과의 대화에 잘 끼지 못해 친구도 몇 명 없었고, 그러다 보니 외로웠다. 아니, 점점 외로워졌다.


외롭지 않고 싶다는 마음은 많은 걸 바꾸어 놓는다. 원래는 성격이 별로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착하게 군 적도 여러번 있다. 못생겼으면서 성격도 안좋다는 말을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운동 신경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친구들끼리 하는 볼링 경기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건 내 뒷모습이 신경 쓰여서였다. 내 커다란 엉덩이를 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공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공을 휙 던지고 얼른 내 자리로 돌아왔다.


휴학 후 새로운 자취방을 구했다. 작은 아빠가 바쁜 시간을 내서 짐을 옮기러 와주셨다. 휴학 전에 살던 하숙집에 있던 내 짐들을 차에 싣고 새로운 자취방으로 옮겨야 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작은 아빠를 번거롭게 한다는 생각에 차가 도착하기 전 오층에 있던 내 방에서 상자 7개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옮겨다 놓았다. 작은 아빠가 도착했고


- 야, 넌 남자친구도 없냐? 이제 이런건 네 남자친구한테 시켜야지. 내가 나이가 몇살인데 이런 걸 부탁하냐?


상자 7개를 옮기느라 힘들었던 나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삼촌은 그 모습을 보고 또 한마디 했다.


- 남자들 땀 많이 흘리는 여자 싫어해. 살을 빼


 마음 속으로는 백 만가지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웃어야 했다.  나는 이 더운날 고생하시는 작은 아빠를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살을 빼기 전까지는 성격 안좋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팥쥐나 신데렐라의 이복 언니 같은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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