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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다이어트의 시작

대한민국 고 3이라면 한번쯤은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대학가면 살 저절로 다 빠져." 다이어트는 생각지도 말고 공부나 하란 소리다. 살 빼는 게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사람은 한 번에 완벽히 두가지를 할 수는 없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 토끼마저 놓친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건 아닐테니까 말이다.  난 대학가면 '저절로' 살이 빠진다는 말을 믿진 않았지만 주문처럼 외우며 배가 고파서 공부가 안되는 순간이 없도록 먹어댔다. 사실 매일 보는 건 같이 살쪄가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살이 찌는 건 성장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각자의 뱃살에 이름을 붙여가며 내 몸에서 이 뱃살과 헤어질 날은 대학에 합격하는 그 날이라고 생각했다. 빠지는 데는 정체기가 있을 지 모르지만 찌는 데 정체기는 없었다. 나는 약 1년 만에 급격하게 15kg 정도 살이 쪘다. 그야 말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매일, 매일 나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오늘은 달이 더 찼네.”라고 했다. 내 얼굴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래도 난 사실을 외면했다. 대학생이 되면 '저절로' 빠지는 기적이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었고 세상에 저절로 되는 건 없었다.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야 완벽한 몸매를 얻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앉아 있기만 하다가 강의실을돌아다니며 수업을 듣다보니 살이 조금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기준에 못미쳤다. 여자들에게 가해진 체중 기준은 간단하고 엄격했다. 자기 키에서 110을 빼면 건강 몸무게, 120을 빼면 미용 몸무게였다.  물론 건강 몸무게라는 게 키에서 110을 뺐을 때가 내 몸에 가장 건강한 체중이라는 게 아니다. '건강해 보이는 몸무게'다. TV에서 아무리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라고 해도 나를 포함해 내 주위에서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다이어트 방법은 건강을 헤치기 딱 좋은 방법이고 심지어 가학적이기까지 했다. 어쨌든 나는 미용 몸무게에는 한참을 못미쳤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기도 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는 무절제하게 놀게 되었다. 밤이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아침이면 해장국을 먹었다. 점심에는 학교 앞에 있는 맛집을 찾아 다녔다. 학교 앞에만 해도 맛집이 수백개는 되었다. 매일매일 맛집을 다녀도 맛집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을 다 가볼 순 없을 것이다. 이렇듯 세상에 맛있는 것과 즐길 것은 넘쳐났고 나와 뱃살의 동거는 계속 되었다.


물론 살을 많이 뺀 친구들도 있었다. 그 친구들은 독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 않는 건 다이어트의 기본이었다. 친구들은 야채 위주의 도시락만 먹거나 식판의 음식은 항상 반씩 버렸다. 반식은 유행이었다. 그렇게 주위 사람들이 살을 티가 나지 않게 빼가는 동안 나는 그대로였다. 나만 그대로라는 걸 인지한 건 옷을 사러 가서였다. 분명히 사이즈가 비슷해서 옷 입는 스타일이 비슷했던 친구가 체구가 작아지면서 독특하고 예쁜 디자인을 입기 시작했다. 체구가 작을 수록 입을 수 있는 옷도 많아졌고 디자인도 예뻤다. 어쩌면 날씬했기 때문에 같은 옷도 더 예뻤을 수도 있다. 물론 옷을 살 때는 예쁜 옷을 사지 못한다는 사실에 우울했지만 그 외의 생활은 같아서 충분히 다른 것들로부터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다이어트를 해야한다는 생각은 잊지 않았기 때문에 밥 양을 조금 줄이고 운동도 꾸준히 했지만 살은 생각만큼 잘 빠지지 않았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쓸쓸해 한다. 그 시기가 되면 헤어지는 커플도, 새로 만남을 시작하는 커플도 늘어난다. 소개팅을 통해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 역시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남자친구가 생긴 친구들은 점점 연락을 소홀히 했고 자연히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줄어 들었다. 나는 점점 심심해졌고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자친구가 생겨서 행복한 친구들에게 "네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와 노는 시간을 늘려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건 친구의 불행을 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 나도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 였다. 친구들은 나에게 살을 빼서 남자 애들보다 덩치가 작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왜 그래야 되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남자들이 자신보다 큰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사실을 어느샌가 알고 있었다. 따라서 친구들의 말은 아주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나는 키가 173cm였고 유전적으로 어깨가 넓었다. 사진 속의 증조할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우리 아빠도 넓은 어깨와 두꺼운 허리를 가지고 있었다. 친척들이 농담처럼 “우리 집안에서 여자가 태어나면 안돼”라고 하는 말은 어쩌면 진실이었다. 난 어깨가 넓고 힘이 세고 키가 큰, 구석기 시대에나 아주 적합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난 달리기도 빠르고 민첩했지만 이런 특성들은 지금 생활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지각을 면하기 위해 강의실까지 달려갈 때에나 장점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키가 작은 남자들도 많았고 어깨가 좁은 남자들도 많았다. 고등학교 생물학 시간에 생물학적으로 남자의 몸은 여자보다 클 수밖에 없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남들보다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었다. 생물학적 상식으로 나의 체격은 잘못되었다. 친구들은 어깨가 넓고 키가 크기 때문에 옷맵시를 위해서는 살을 빼서 마른 체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밥 먹는 양을 좀 줄이고 운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습관이었다. 쥐 실험에서 소식을 하는 쥐가 오래 살았고 운동을 하는 것은 여러 실험을 통해 건강을 위해 바람직한 행위라는 게 익히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체중보다 과체중인 사람이 오래 사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은 내가 알면 좋지 않은 실험 결과였다. 이런 실험결과들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식과 운동은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성격이 급했던 나는 바나나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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