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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적절한 운동과 식이요법이라는 함정

나는 매일 매일이 불안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갑자기 내가 누구인지, 나는 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왜 눈을 떠야만 했는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밤에 잠드는게 무서웠다. 아침마다 맞게 되는 공허함이 두려웠다. 나중에 내가 그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앞날이 불안하기도 했고,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기도 했다. 나는 내가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고, 미웠고, 스스로를 혐오했던 것 같다.


내부적으로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고 매일매일이 전쟁같았지만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학점관리도 잊지 않았다. 교수님들로부터 전공 분야의 실력이 늘고 있다는 칭찬도 들었다. 하지만 집에만 오면 음식을 갈구하는 악마 앞에서 하루 하루 좌절의 순간을 맞았다.

부모님의 전화는 받지 않았다. 친구들은 나를 매일 보지만, 부모님은 내 얼굴은 커녕 목소리를 듣는 것도 오랜만이기때문에 나의 병적인 상태가 목소리에도 묻어 나올 것 같아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부모님과 통화를 하진 않았지만 친구들과는 원만하게 지냈다. 친구와 통화를 하다 졸업사진 얘기가 나왔다. 


- 생각해보면 졸업사진 찍을 날 몇 달 안남았어. 그 때까지 얼른 살 빼야 할텐데.


나는 얼마 전 작년에 대학을 졸업 한 사촌 언니 집에서 보았던 졸업사진이 떠올랐다.


- 사촌 언니 졸업사진을 봤는데 하나같이 다 말랐더라.


- 예뻐? 남자들은 어때?


- 남자들은 자세히 안봤고 여자들은 예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었어.


- 거기도 희망없는 여자 들이 많구나.


친구는 마른 데 예쁘지 않은 여자를 "희망 없는 여자"라고 표현했다.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는 희망이었다. 살을 빼면 지금보다 더 예뻐지겠지, 그럼 사람들이 날 더 따뜻하게 대해 주겠지, 그리고 난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겠지. 이런 기대를 하고 있던 나에게 ‘희망 없는 여자’는 존재가치를 의심받는 다는 뜻으로 들렸다. 물론 친구의 말은 순간적인 웃음을 유발했고 친구의 의도도 그러했지만 나도 '희망 없는 여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 당시 다이어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기였다. 100kg이 넘는 비만한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은 게으르고, 예쁘지 않고, 삶이 불행했다. 그리고 인터뷰 때 살을 빼면 자신이 살을 빼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얘기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되고, 행복한 삶을 위해 개인 트레이너들이 운동 하는 방법을 자세히 지도해주었다. 운동뿐만 아니라 식단도 관리해주었다. 거기에 나왔던 출연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탄탄하고 가벼운 몸이 되어갔다. TV에 나온 사람들은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모두 생업을 포기하고 TV에 나와 오로지 살을 빼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썼다. 그리고 그들의 달라져가는 모습은 굉장히 그 시간을 가치 있는 것처럼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식단 조절을 하고, 운동도 하고, 몸에 좋은 것만 먹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운동을 하느라 육체적으로 더 많은 힘이 들긴하겠지만 분명 지금보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덜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운동을 하면 엔돌핀이 분비되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했다.  시중에 많은 책들도 적당한 운동과 식이가 얼마나 중요하다고 하는가.확실히 살도 뺄 수 있으면서 건강에도 좋은 이 다이어트야말로 정말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다이어트라고 생각했다.


PT를 받는 것은 가격이 비싸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그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인터넷과 서점을 뒤졌다. 생각보다 많은 개인 트레이너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위해 찾은 서점에서는 운동에 관련 된 많은 책들이 있었다. 저자들은 하나같이 이상적인 몸이 되게 하는 운동 방법과 적절한 식이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물론 이상적인 몸은 몸매가 좋다고 인터넷에서 뉴스 거리가 되는 연예인들이었다. 


책을 쓴 트레이너들은 자신들이 관리 했던 연예인들의 변화를 보여주며 자신들에게 바디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어떤 연예인들은 자신이 직접 모델이 되어 책을 쓰고 본인의 피트니스 센터를 홍보하기도 했다. 다이어트 약이나 주사도 그렇지만 이번 운동에 관해서도 일관되게 느낄 수 있었던건 어떤 정보든 찾으면 찾을 수록 매력적으로 그 정보가 보이게 되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알면 알수록 이것보다 쉽고, 좋은 게 있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운동도 그랬다. 나는 최대한 빨리 이 확실한 다이어트를 하고 싶었다.


근처의 피트니스 센터를 찾아 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하는 많은 사람들 사이로 근육질 남녀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사람들은 TV나 거울을 보며 운동을 했다. 나는 이전에도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했었지만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운동을 하는 건지 몰랐기 때문에 이때까지 살이 안빠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문 트레이너는 나에게 친절했다.


-  안녕하세요. 회원님. 먼저 인바디부터 재고 상담하겠습니다.


인바디는 체지방량, 골격근량 같은 걸 측정하는 기계다. 나는 기계 위에 올라가 내 몸의 근육량, 체지방량, 복부지방량 들을 체크했다.


-  회원님은 다른 회원님들에 비해서 근육량이 많으신 편인데 지방을 조금 더 빼서 탄탄하고 슬림한 몸을 원하시는 거죠?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이 때까지 이 센터를 다니면서 다이어트에 성공한 '회원님'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를 흥분시켰다. 


-  회원님도 충분히 가능하십니다. 사람 몸은 원리는 똑같습니다. 적게 먹고 운동하면 당연히 빠지죠.  그런데개인 트레이닝이 왜 필요하냐?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저희 트레이너들이 그런 부분들을 항상 옆에서 체크하는 거죠.


사람마다 체형도 근육의 발달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몸을 위해서는 바디 디자이너인 트레이너가 꼭 필요하다고 했고 그에 대한 설명은 30분 간 이어졌다.


- 가격은 어떻게 되요?


- 일 회당 팔만 오천원인데 신규 고객님이시니까 삼개월 36회 패키지로 하시면 300만원에 피트니스 센터 이용료 20만원 2개월 분 내고 3개월 다니실 수 있습니다.


3개월을 다니면 총 320만원 이었다. 한달에 약 100만원. 시급 칠천원인 아르바이트를 매일 몇 시간씩 해야 했다. 나는 돈이 없었다.  부모님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근 몇 주 만에 하는 전화였다. 물론 성인이 된 딸이 부모님께 이렇게 큰 돈을 손 벌리는 건 죄송하고 부끄러웠지만 이 기회가 나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망설였다. 다이어트 약이나 주사같은 것들은 다 내 용돈으로 하고 엄마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내가 갑자기 왜 이렇게 살 빼는 것에 집착하는지 의아해 했다. 나는 다른 애들은 성형하는데 몇 백만원씩 쓰는데 나는 그것도 안했으니까 성형 시켜 준다고 생각하고 3개월 간 운동을 시켜달라고 떼를 썼다. 엄마는 운동을 혼자서 하면 안되겠냐고 했지만 나는 희망, 행복, 소원 같은 단어를 써가며 엄마를 설득했고 엄마는 엄마의 수면과 여가시간 등을 포기하고 얻은 돈으로 나의 다이어트 비용을 대주었다. 엄마는 내가 이렇게 PT에 집착하는 이유는 몰랐지만 어떤 일로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는 듯 했다. 


첫 수업시간. 뭘 그렇게 대단한거 한다고 한 시간에 10만원씩 받는지 두고보자는 마음으로 했다. 수업은 전문성이 있긴 했다. 특이한 도구들도 많이 사용해서 독특한 동작으로 운동했다. 기계를 사용하기도 했고 짐볼, 케틀벨 같은 방송에서 자주 보던 도구뿐만 아니라 이름도 특이한 원통형 기구를 들었다 내렸다 하기도 했다. 트레이너는 이 기구의 이름이 바이퍼라고 했다. 이 기구가 전국에 몇 개 없는 운동기구라고 했다. 내가 이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건 남들보다 더 빠르게 아름다운 몸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뜻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마사지도 잊지 않았다. 근육들을 풀어줘서 더욱 근육강화가 잘 되고 부상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직접 스트레칭을 하는 것보다 더 좋았다.  내가 직접 스트레칭 하는 것보다 귀찮지도 않고 더 시원했기 때문이다. 


3개월은 이전의 다이어트들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진 않았다. 운동을 할 때마다 트레이너와 대화를 하면서 고통스럽게 운동하지 않아도 되었고 320만원이라는 가격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가게 만들었다. 320만원을 매몰비용으로 만들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지방이 빠지고 근육이 탄탄해지는 게 눈으로 보였다. 그리고 항상 비밀스럽게 하던 다이어트를 트레이너와 같이 웃으며 할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도 다이어트 중이라고 당당히 얘기했다.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살 빼는 것은 나를 당당하게 만들었다. 운동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의 피와 땀이 섞인 320만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노력했다. 점점 50분에 10만원이라는 가격이 그렇게 비합리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를 마사지하고 운동을 시키고 음식을 관리해 주는 일이 10만원의 노동의 크기를 가지냐보다 내가 느끼는 가치가 더 중요했다. 내가 50분에 10만원치의 행복을 충분히 누리고 있고 이 행복은 내가 살이 빠지고 건강해짐으로써 50분 이상의 행복을 가지게 될 것이므로 하나도 아깝지 않은 금액이었다.  


물론 한 번 운동할 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시간이 걸리긴 했다. 이동시간과 샤워시간 까지 3시간은 족히 걸렸다. 20분 간 워밍업을 하고 50분의 근육 운동, 그리고 다시 40분의 유산소 운동을 했다. 20분의 워밍업 시간 동안 체온을 올려 근육의 긴장을 풀어 준 뒤 50 분 동안 근육 운동을 했다. 그리고 뜨거워 진 몸으로 40분의 유산소 운동을 하면 지방이 탄다. 유산소 운동은 꼭 30 분 이상 해야 했다. 30분 이전에는 탄수화물이 사용되다가 그 이후로 지방이 타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식사일기를 기록했다. 그리고 트레이너에게 확인 받았다. 식사일기를 쓰고 확인 받는 건 클리닉의 의사와 다를 바 없었지만 라테를 먹으면 안된다는 터무니 없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적절한 양의 탄수화물은 아침에는 현미밥 반 공기, 점심에는 바나나 1개, 저녁에는 고구마 1개 정도의 양이었다. 그 대신 닭가슴살, 소고기 안심, 삶은 계란과 같은 단백질과 야채는 적극 권했다.  친구들과 외식을 할 때면 사진을 찍어서 이걸 먹어도 되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면류는 거의 다 허락하지 않았고 만약 먹어야 한다면 자장면 보다는 짬뽕을 볶음밥보다는 비빔밥을 권했다.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고 특히 내가 먹는 것들을 일일이 보내고 허락받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3개월 간 운동을 매일 하고 식단 조절 하는 건 확실히 스트레스도 덜받고 즐거웠다. 건강도 좋아지고 행복했다. 300만원은 전혀 아까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피와 땀은 그렇게 내 행복 속에 희석되어 갔다. 엄마도 내가 살을 빼고 행복해 하고 짜증을 덜 내는 모습에 같이 기뻐해주었다. 무엇보다 이 기간에는 내가 먼저 부모님께 전화하고 안부를 여쭈는 일이 많았다. 3개월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개인 강습을 더 받고 싶었지만 더 이상은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었고 혼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렇게 건강한 다이어트를 이제까지 몰랐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다시 내가 생각했던 모습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말 농담처럼 살은 서서히 다시 쪘다. 일상에서 이 운동량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않았다. 규칙적인 생활은 처음 몇 달간은 유지 됐지만 학교에서의 생활은 다시 원래의 나로 되돌아가게 만들었다. 과제와 시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트레이너가 시켰던 것처럼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사실 하루 3시간가량의 운동은 다른 직업이 있는 사람에게 전혀 적절한 운동이 아니었다. 매일 그렇게 운동을 하기엔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운동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그 때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었는데, 너무 서서히 다가와 나는 어느 순간 다시 돌아온 내 모습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난 뭘 해도 안 될 사람이구나' 라는 열패감만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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