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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다이어트 주사

어쩌다 내가 다이어트 병원까지 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원푸드 다이어트를 하다가 다이어트 약을 구매하다가 어느 순간 나는 다이어트 전문 병원을 가게 되었다.


각종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올리는 곳들이 있다. 그 곳에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다이어트 후기를 올리기도 하는데 매번 새로운 사람들이다. 요즘 들어 그 수가 늘었지만 다이어트 식품 광고도 있긴 하다. 조회수나 추천수로 올려지는 베스트 글에서 다이어트 주제가 떠난 적은 잘 없었다. 나 역시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다이어트 비포 애프터, 및 후기를 보며 정보를 얻고 자극을 받았다. 그 중 몇몇 여자들이 다이어트 주사 PPC를 맞았다는 정보를 봤다. PPC는 일명 브리트니 스피어스 주사라고 불린다. 임신 후유증으로 살이 많이 찐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저 주사를 맞고 다시 예전의 완벽한 몸매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그 주사는 학교를 오며 가며 봤던 다이어트 클리닉에 있다고 했다. 


클리닉이나 의원이 병원과 다른건 정식 레지던트와 인턴을 밟지 않은 의사자격증 소지자들은 병원이라는 명칭을 쓸 수 없어 클리닉으로 개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다이어트 클리닉이라는 이름이 다이어트 병원에 비해서 나았다. 다이어트 병원이라고 하면 병걸린 사람 같지 않은가! 나는 학교 앞에 있는 다이어트 클리닉을 갔다. 의사는 가벼운 몸을 가지고 있었다. 광고에 나오는 성형외과 의사들의 얼굴이 반지르르 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이어트 클리닉의 의사는 얍실한 얼굴과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이런 병원들도 이젠 허준이나 이제마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의 병을 고치고, 살리는 곳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높여 준다고 홍보하며 고객을 불러 들이는 상업적인 곳이 되었다


의사는 웃으며 고객의 몸을 훑었다. 그리곤 허벅지와 팔의 물컹거리는 지방을 만졌다. 오늘 처음 보는 남자였고 내밀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스킨십이었지만 불쾌하거나 놀랍지 않았다. 그 의사가 나의 몸을 체크하는 것은 당연히 거쳐야할 의례였다. 내 몸을 여기저기 만진 의사는 곧이어 내 몸을 분석했다. 그는 나에게 허벅지에 지방을 좀 빼야겠다고 말했다.


조금 내 몸을 만지던 그는 내가 해야할 시술은 셀룰라이트를 분해하는 카복시와 지방분해주사라고 했다. 그건 지금 패키지로 할인한다고 했다. 의사는 나에게 평소 식습관이 어떻냐고 물었다. 

최근 몇 개월간 나는 다이어트를 해왔기때문에 고정 된 식습관이 있을리 없었다.

그는 내 비밀을 지켜줄 의무가 있고 날 상담하는 의사인데도 내가 다이어트에 일상이 잠식당한 사람이란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불규칙하게 먹는 음식들을 아침, 점심, 저녁, 세개로 나누어 말했다.


-아침에는 카페라떼 한 잔 정도 마시고 점심엔 친구들이랑 밖에서 김밥이나 분식처럼 간단하게 먹어요. 음....... 저녁에는 간단하게 빵이나 샐러드 같은거 먹어요. 아니면 집에서 밥 먹던지.  


의사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 빵이랑 라떼는 먹으면 안돼요. 라떼가 우유인거 알죠? 그것만 안 먹어도 일년에 2~3kg이 빠져요.


그리고는 서랍에서 식사일기 공책을 꺼내주었다.  


- 여기에다 아침, 점심, 저녁 먹은거 기록하고 항상 야채위주의 반찬먹고 밀가루, 과일 같은 거 먹지 마세요.


당부를 마친 의사는 내게 지방 분해 주사와 카복시의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지방분해 주사는 세포 삼투압의 원리를 이용 해 지방 세포에서 지방을 빼내는 것이었고 카복시는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셀룰라이트를 움직이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결국 이 두 주사 모두 지방 세포 자체를 제거하거나 실제로 지방이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건 아니었다. 지방 분해 주사를 맞고 지방 세포에서 나온 지방들은 림프관을 흐르다 다시 세포 내로 흡수 될 수 있었다. 


의사는 설명을 끝낸 후 꽤 은밀하게 물었다.

- 혹시 식욕억제제 복용해본 적 있어요?


나는 의사에게 식욕억제제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다이어트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에 다니긴 하지만 의지부족 때문에 내가 살을 빼려고 하는게 아니라고 알리고 싶었다. 


- 제가 먹을거 하나 못 참겠어요?


 간호사는 지방분해주사가 할인 중이어서 예약이 다 찼다며 그 다음 주로 예약을 잡아 주었다.  한 주간 인터넷으로 주사를 맞고 난 전 후 사진을 보며 미래의 내 허벅지에 대해 상상을 했다. 어쩌면 바지를 한 사이즈 줄여야 해서 새로 옷을 사는데 돈이 들겠다는 행복한 상상도 했다. 


드디어 예약한 날이 왔고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병원에 갔지만 막상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기는 망설여졌다. 그 병원이 '다이어트를 위한 클리닉'인건 건물 앞에 있는 광고판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그 곳에 치료를 목적으로 다닌다는 게 부끄러웠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을 때 잽싸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병원 안에는 예약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예약 시간이 되자 간호사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이층으로 올라가셔서 탈의 하시고 주사실로 가시면 됩니다.


나는 간호사의 부름에 따라 이층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 옆의 선반에는 다이어트 쿠키가 있었다.  일층에서 이층으로 꺾어지는 구간에는 보톡스 시술이  20% 할인을 한다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이층 탈의실에는 여덟개의 사물함, 블랙 커피와 가운을 걸친 한 여자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옷을 다 벗고 사물함 안에 걸려있는 가운을 걸쳤다. 그리고 주사실로 들어갔다. 주사실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붉은 색 천으로 구역이 구분 되어 있었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웠다. 잠시 후, 여덟개의 주사기가 든 통을 들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간호사는 내 전공이 무엇인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운동을 뭘하는 지 등을 물어봤다. 간호사는 친절했다. "조금 따끔해요."라는 말과 함께 내 배와 허벅지에 8개의 노란 액체를 주사했다. 한 주사기로 여기저기 배분해서 주사했기 때문에 8개의 주사를 맞는 동안 약 30번은 바늘에 찔린 것이다. 그 클리닉을 다니면서 맞은 약 120번의 주사는 그 이전에 내가 평생 맞은 주사 수보다 많았다.  노란색 액체가 들어갈 때마다 약간 차가운 느낌이 들었고 정말 이 소량의 약물로 살이 빠질지 궁금했다.


지방 분해 주사는 노란색이었는데 주사 바늘이 들어갈 때 약간 따끔한 걸 빼면 아프지 않았다. 문제는 카복시였다. 바늘을 허벅지에 찔러 넣은 뒤 이산화탄소를 주입했다. 정말 아팠다. 이산화탄소가 들어가는 그 동안은 전기 충격을 받고 있는 돼지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 공기가 근육을 건드릴 때마다 찌릿찌릿함이 경련을 일으키게 했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계속 아프냐고 물었지만 난 소리를 지르지 않고 입술을 꽉 물고 참아냈다. 간호사는 이렇게 잘 참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신기해 했다. 나는 맞는 동안 다시는 살 안쪄야지. 내가 왜 돈주고 이 고생을 하는 걸까? 내가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의 종착점은 소녀시대 같은 다리만 가질 수 있다면 이쯤은 다 감내할 수 있다는 거였다. 


꽤 빨리 4주가 지나갔다.  총 10번의 시술 끝에 내 다리 사이즈는 3cm가 줄었다. 운동도 하나도 하지 않고 주사만 맞았는데 허벅지의 지방들이 빠진 것이다. 약물은 정말 효과가 있었다. 의사는 마지막 상담에서 나에게 이 주사를 더 맞을 거냐고 물어보았지만 난 이제 맞지 않겠다고 했다. 효과는 좋았지만 주사를 맞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드는 혐오감과 왜 이렇게 까지 해야하는지 회의를 감당하기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운동과 식이요법을 통해 건강하게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사는 매 시술마다 나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였고, 나는 주사를 통해 꼭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살을 빼고야 말리라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한 동안은 운동도 시작하고 건강한 방법이라고 TV에도 여러 번 나왔던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밀가루와 고기, 설탕을 먹지 않는 방법이었다. 서양인들의 주식은 밀가루였지만, 한국의 밀가루는 정제가 많이 되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음식을 억지로 먹지 않기는 정말 힘들었다. 내 허벅지는 한 달만에 원래의 사이즈로 원상복귀했다. 내 의지가 정말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지만 내 몸은 정말 이상했다. 살을 억지로 빼면 그것에 대한 피해의식을 몸이 스스로 가지고 자꾸만 무언가를 더 먹으려고 했다. 몸은 음식에 집착했다. 먹고 싶지 않아도 계속 입에, 위장에 음식을 가득 채워야만 살 것 같았다.

 

먹고 싶은 것을 참지 않고 먹었으면서도 항상 먹을 때마다 고민을 하니 제대로 먹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난 언제나 안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머리 속에서 음식이 떠나질 않았다. 음식은 아무 죄가 없는데, 음식만 보면 나를 살찌게 하는 악의 근원인 것만 같아서 증오가 일어났다. 음식만 보면 짜증이 났지만 입에 넣으면 행복해지는 이상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체중이 다시 늘어날 수록 스트레스를 받았다. 음식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 수록 음식은 날 지배했다.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고 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를 시작 한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명상 중 펑펑 울고 말았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하고 있었던 요가였는데 동작을 하는 중에도 나는 음식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음식 때문에 뛰쳐나가고 싶었고 그런 내가 혐오스러웠다. 내 몸도 내 정신도 내 영혼도 다 혐오스러웠다. 영혼은 내가 질려서 이미 내 몸을 빠져 나가고 나에게는 육신과 음식에 미친 귀신이 씐 정신만이 있는 것 같았다. 영화 <곡성>에서 귀신에 씌인 아이가 냉장고를 열어 음식을 입에 마구 넣는 모습을 보며, 아 나는 정말 귀신이 들린 것이구나 생각하며 혼자 오싹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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