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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다이어트 약이라는 신세계

다이어트를 계속 하게 만드는 동기들은 끊임없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예쁜 친구가 “나 너무 뚱뚱한 것 같아. 오늘부터 다이어트하려고.”라고 말을 할 때도 그랬고, 오랜만에 나간 소개팅에서 상대방 남자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지 못할 때도 그랬다. 다이어트를 끊임없이 하는 친구들 역시 자신의 몸에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땐 몰랐다. 그 때 나에게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정답이었다. 소개팅이 외모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가치관, 유머, 자신감 등 다른 요소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도 그 땐 정말 몰랐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서로의 뱃살에 별명을 붙이며 놀았다. 그 때만 해도 이름을 붙이며 귀여워했던 뱃살들은 이제 혐오감의 대상이었다. 샤워할 때 보는 뱃살은 나를 분노하게 했다. 배가 조금만 나와도 그날은 굶었다.  나는 더 빨리 살을 빼고 싶었지만 원푸드 다이어트 역시 내가 원하는 몸을 얻기엔 역부족이었다. 


화창한 봄날, 친구들과 나는 학교 동산에 있는 벤치에 앉아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역시 주제는 다이어트였다. 대화 주제는 그 집단의 관심을 반영하는 법이다. 


- 그거 들었어? 모델들은 밥 먹을 때 서서 먹는데. 그래야 힘들어서 덜 먹는다고.


- 맞아. 그리고 걔네 밥도 한, 두끼 밖에 안 먹는대.


- 하긴 어떻게 세 끼 다먹고 그 몸을 유지하겠어.


- 아, 그리고 나 무용과 애들 어떻게 살 빼는지 정보 입수했어. 친한 친구가 무용과 애랑 친군데 걔네 먹는 거 다먹고 약 먹는대.


- 무슨 약?


무용과 애들의 공공연한 다이어트 방법은 다이어트 약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안먹을 수 없기 때문에 다이어트 약으로 영양소가 흡수되지 않게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다이어트 약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종류도 다양했다. 식욕억제제부터 탄수화물 흡수를 억제하는 약, 지방을 분해시키는 약들도 있었다. 약은 신세계였다.  왜 이제야 약의 존재를 알았는지 원망스러웠다. 이때까지 힘만 들고 살도 많이 빼지 못한 원푸드 다이어트와 다르게 약은 무용과 애들의 몸처럼 가늘고 긴 몸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약들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의약품으로 분류된 건 의사의 처방을 받아 살 수 있지만, 올리브영 같은 드러그스토어에서 의사나 약사의 처방없이도 손쉽게 약을 살 수 있었다.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전환되는 걸 막는 HCA, 과체중 성인의 지방을 분해해주는 CLA, 식욕 억제제등 다양한 약이 있었다. 나는 일단 의사의 처방전 필요없이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는 CLA와 HCA를 샀다. 약은 비쌌다.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2알씩, 총 28일 분량에 각각 오만원이 넘었다. 약의 겉포장에는 군살하나 없이 날씬한 모델의 복부가 프린트 되어 있었다. 기호학적으로 말하자면 ‘기표적 의미’는 단지 군살없는 탄탄한 복부이지만 ‘기의’에는 이 약을 먹으면 충분히 나도 그렇게 될 거라는 암시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또 이 다이어트에 관한 신화가 하나 더 양산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약을 구입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결과 이 약을 최소 3개월은 먹어야 한다고 해서 나는 주저없이 20만원치의 약을 샀다. 물론 이 돈은 편의점이나 분식집에서 값싼 음식만 먹고 덜 놀면서 모은 돈이었다. 편의점이나 분식점에서 파는 음식은 밀가루와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라서 건강에도 좋지 않고 살도 잘 찐다는 걸 알면서도 먹었다. 싸고 맛있기 때문이다. 이런 음식들에 길들여지면 집에서 먹는 음식은 싱겁고 자극적이지 않아 먹기가 싫어진다. 심지어 가격도 싸니 굳이 집에서 맛없는 음식을 더 많은 값을 치르고 먹을 이유가 없었다. 


과체중 성인의 체지방 감소에 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CLA의 공식 명칭은 공액 리놀렌산(Conjugated linoleic acid)이다. 다이어트용으로 먹기에 약간 무시무시한 이름이라서 처음엔 망설여졌다. 더 찾아 본 결과, 공액 리놀렌산은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수와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파리자 교수가 최초로 항암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처음 공액 리놀렌산에 대한 연구를 한 것은 체지방 감소 효과가 아니라 항암 효과였다는 건 주목할 만 하다. 처음 목적과 다르게 결국 이 약은 다이어트 부문에서 가장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 이후로도 CLA의 여러 효능들이 밝혀졌다. CLA의 검증 받은 효능은 대부분 쥐 실험을 통해 발견 된 것이다. 약은 생쥐의 피부암과 위장암, 쥐의 유방암, 대장암 등의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 생쥐의 체지방을 감소하는 효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에서 총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기도 했다.  실험동물의 혈당을 저하시키고 동물들의 사료효율을 높여 성장이 촉진되기도 했다. 모두 동물 실험을 통한 결과였다. 이 많은 동물실험 결과 중 유독 주목을 받았던 것이 체지방 감소 효과였고 결국 의약품 외 식품으로 버젓이 편의점에서 팔리고 있었다. 


나는 이 약을 이 주 간 섭취했다. 음식을 통제하고 안 먹는게 어렵지, 약이든 뭐든 규칙적으로 먹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복용한 지 삼, 사일이 지난 뒤부터 위장 장애와 두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빨리 먹어도 체해본 적이 없었는데 밥을 먹고 체해 먹은 것을 다시 쏟아 내기도 했다. 특히 아침이면 어떤 음식이든 먹으면 구역질이 날 것 같아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머리도 너무 아팠다. 누군가가 머리를 꾹 누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고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었다. 수업도 잘 들리지 않고 공부를 하기도 힘들었다. 난 인상을 찌푸리고 다녔다. 처음에는 약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약을 먹은지 이 주째가 되던 저녁,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CLA의 부작용을 검색했다. CLA에 대해서 그렇게 검색을 했으면서도 왜 부작용에 대해서는 미리 알아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검색 결과, 이 약을 아주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부작용은 꽤 심각했다. 복부비만자가 CLA를 섭취한 뒤 체중과 체지방 감소가 나타났는데도,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고 고혈당과 일명 좋은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는 HDL 콜레스테롤이 감소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은 미임상영양학 저널을 통해 CLA가 인간의 체지방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지만 심장병, 제 2형 당뇨병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CLA의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었다. 심지어 생리가 멈췄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HCA는 가르시니아 캄보지아라는 식물의 추출물이 다이어트 효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쥐가 희생되었고, 사람들도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HCA 성분이 체지방을 감소시키는 원리는 세로토닌 분비를 증가시켜 식욕을 억제하고 글리코겐 저장 능력 강화로 혈당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저장되는 양을 감소시키고 탄수화물과 지방을 연소하여 에너지량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정보들은 인터넷에서 자신들의 HCA 제품을 팔고자하는 기업의 광고 문구인지 몰랐다. 

나는 다만 먹으면 탄수화물을 배출하고 체중이 감소한다고 식약처를 통과한 약을 샀고, 복용 후 두통과 구역질 등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약 먹는 것을 멈추었다. 부작용에 비해 약들은 의사나 약사의 통제없이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나는 좀 더 의사가 검증하는,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제약사의 약들이 아주 철저한 연구와 임상실험에 의해 나오고, 약들의 부작용이 있으면 걸러졌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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