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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첫 연애의 실패

이 시기에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친구로부터 소개받기 전까지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사람을 길 위에서 만났다. 일면식 없던 사람을 그 날 한 번으로 다시 만날지 안 만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소개팅은 외모가 가장 중요했다. 신촌역 근처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나보다 키가 훨씬 컸고 덩치도 컸다. 합격! 나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 나를 커 보이게 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첫 만남에 우리는 서로 의견을 조율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각자의 취미, 특기,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몰랐다. 생각이 많이 어긋나지만 않으면 우리는 외모가 허용 범위인지, 나랑 잘 맞을지 등을 봤다. 친구들 중에는 그 남자가 차가 있는지, 어디에 사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아니었다. 물론 소개팅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질 사람을 만날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나쁘지 않다고 느꼈고 세 번 정도 만난 끝에 사귀게 되었다. 드디어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연애를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남들도 다하니까 한 번 해보고 싶었고 또 내 남자로 불릴 사람이 있으면 더 이상 예뻐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연애를 시작하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가 다이어트를 한 것이 꼭 남자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남자 친구를 사귀면 다이어트는 그만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남자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더 살을 빼야 했다. 물론 그가 나에게 살을 빼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누군가의 다른 여자 친구보다 별로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심지어 나보고 살 빼라고 하지 않는 그 남자가 이상해 보였다.


나는 대중 매체에서 그려지는 전형적인 여자의 모습을 평소에 부정적으로 보아왔지만 나도 모르게 나는 드라마 속 인물처럼 행동했다. 드라마에서 나왔던 비슷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해 왔던 사고방식, 행동 등을 따라 하게 되었다. 이전에 연애를 해본 적이 없으니 어떤 상황을 해결하는 지침이 대중매체였던 것이다. 가끔은 내 외모가 여자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도 생각했다. 나도 현실 연애와 드라마 연애의 간극 사이에서 불편함이 느껴졌지만 한 번 그렇게 정립된 관계는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관계가 깨어질까 전전긍긍했던 나는 남자에게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지금과 같은 마음일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한 번이 아니라 수도 없이 물었던 것 같고, 그때마다 남자는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지금처럼 사랑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불신했다. 만난 지 세 번만에 날 사랑한다는 것도, 예쁘지 않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예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다 거짓말이라 생각했고 그는 점점 나에게 거짓이 되어갔다. 결국 나는 그와 허무하게 헤어졌다.


헤어지고 오랜 기간이 지나 닐 도날드 월쉬의 <신과 나눈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게 정확하게 내 상태가 설명되어 있었다.


'가장 잘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다.'


나같은 사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사람은, 그리고 그 방법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상대방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상대방이 자기를 의도를 가지고 주무르려 한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얻어내려고.(어떻게 당신들이 본래 모습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야, 뭔가 착각을 한 게 틀림없어. 당신들은 분명 내게서 뭔가를 원하는 거야!)


그들은 죽치고 앉아 어떻게 자기네를 진짜로 사랑하는 일이 있을  있는지 온갖 생각을 다해 본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그들은 결국 상대방에게  사랑을 증명하도록 만드는 작전을 펼친다. 상대방은 그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번째로, 오랜 시간 끝에 마침내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믿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들은 이내  사랑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있을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래, 날 사랑할 수는 있지만 나의 실체를 알고나면 날 싫어하기 시작할거야 )그리하여 그들은 상대방의 사랑을 붙들어두기 위해 자신의 행동방식을 바꾸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문자 그대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상실한다. 그들은 자신을 찾고자 관계를 맺었지만 오히려 자신을 잃고 말았다.  


두 사람은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크리라는 기대를 품고 함께 짝을 이루지만, 오히려 더 못하다는 사실만 깨닫게 된다. 관계 속에서의 이 같은 자아상실이야말로 관계에서 생기는 괴로움의 주요한 원인이다.

(p 207)


이 또한 정확히 나 괴로움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정확한 해결방법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내 스스로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도 나에겐 불가능했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기에 너무나 불완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아름다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름답지 않은 것에 대한 사랑은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내가 아름다운 딸이 아니라면 부모님도 날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포유류의 새끼들이 유독 귀여운 이유가 일정 기간을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이 글은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내 부담을 한층 가중시켰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내가 지방으로 내려가야만 부모님을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시간이 날 때 집에 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쉬어가라고 했지만 내 모습을 보고 나에 대한 애정이 떨어질까 걱정이 됐다. 나는 명절 때도 집에 가지 않고 자취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누구도 내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가지는 게 싫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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