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a Feb 11. 2021

'사리'입은 여자들

날이 밝자 길거리를 다니는 여자들도 많아졌다.  특히 지하철에는 집단으로 있는 여자들을 볼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검문이었다. 파키스탄의 폭탄 테러 이후로 검열 시스템이 강화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마치 입국장에 들어가듯 짐 검사, 몸 검사를 받았다. 여자와 남자는 따로 검문 받았다. 여자들은 커튼으로 두른 칸막이에 들어가 여자로부터 검열을 받았다. 군복을 입은 여자는 내 몸을 더듬어 무기가 없는 지 확인 했다. 물론 형식적인 검사일 뿐이었다. 내가 과일을 먹기 위해 과도를 작은 가방에 넣고 검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들은 과도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나름의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어떻게 칼을 발견 못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검문을 마치면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지하철역에도 특이한 시스템이 있었다. 벽도 기둥도 바닥도 회색 빛인 지하철에서 밝은 분홍색으로 'Women Only'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영어로도 쓰여있고 힌디어로도 쓰여 있었다. 영어와 힌디어를 모른다 해도 그 곳이 여자들만 타는 곳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여자와 남자가 확연히 다른 곳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Women Only' 칸은 말 그대로 지하철에 여자들만 타는 칸이 있었다. 언제나 논쟁이 되는 얘기지만 이런 보호가 과연 여자를 보호하는 건지 아니면 여자들을 약한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더 심한 차별을 발생시키는 지는 알 수 없다. 재미 있었던 건 사실 그 규칙은 꼭 지켜야 하는 건 아니어서 엄마 손을 잡은 남자 아이들이 타기도 했고 지하철 문이 닫히기 전 급하게 탔던 남자들이 타기도 했다. 물론 여자 전용 공간이 아닌 곳에 여자들도 타긴 했다. 그런데 대부분은 남자와 여자가 따로 탔다. 여자들 칸에 탔던 남자들도 한 정거장이 지나면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어쨌든 사람들은 겨우 분홍색 스티커를 따라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모여 지하철을 탄다는 것이다. 


젊은 여자들은 청바지와 티셔츠 같은 전형적인 미국식, 현대적 복장을 하고 있거나 인도의 전통 옷인 사리를 입고 있었다. 복장에서도 인도가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곳 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현대식 복장이라고 해도 여자들이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지는 않았다. 다들 긴 바지를 입고있었다. 내가 보기엔 전통적인 복장인 사리가 오히려 선정적이었다. 사회마다 시대마다 선정적인 것의 기준은 다르지만, 만약 한국에서 여자들이 사리를 입고 다닌다면 분명 선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사리는 배꼽티였다. 사리가 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윗옷은 정확히 가슴까지를 가리고 밑에 치마 같은 것은 배꼽부터 가렸다. 그래서 그들의 허리가 한 뼘 정도 드러났는데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입은 사리는 그들의 허리 사이즈에 비해서 작았다. 살들이 옷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지만 거의 모두가 그랬기 때문에 이상하게 쳐다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을 신기하게 보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사실 그 튀어나온 살을 보는 동시에 '인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누군가의 외형에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일명 알라딘 바지라고 불리는 편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사실 여행객들은 알라딘 바지를 많이 입고 다니긴 하지만 지하철에서 이 바지를 입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잠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행색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짐을 풀어 내 청바지를 꺼내 입을 수도 없었고, 그러기엔 알라딘 바지가 편했다. 가끔씩 내가 입은 바지를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지만 다들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집단 간의 압박을 통해 행동을 통제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내가 외국인이어서 외모에 대해서는 강한 평가의 시선이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왜냐면 집단에서 이탈되자 비난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기때문이다. 그것을 깨달은 계기는 인도 라자스탄 지방의 자이살메르에 갔을 때의 경험 때문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나와 몇몇의 한국인들은 자이살메르성 앞에서 열리는 한 국회의원 사망 추모 가요전에 초대 받았다. 그 날은 1박 2일 동안 낙타 사파리를 하고 돌아온 날이어서 무척 피곤해 있었지만 초대를 거절 할 수 없어 가게 되었다. 그 가요제의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인도는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았다. 광장을 빼곡히 메우고, 담 위에도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우리는 무대 위에 오르는 가수들이 부르는 비슷비슷한 노래들을 들었다. 지방의 무명 가수들이라고 했다. 나는 대중 음악에 대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아도르노가 분석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중 음악들은 결국 다 똑같은 형식의 노래인데 사람들의 지겨움을 덜기 위해 '유사 개별화'를 통해 조금씩의 차별을 둔다고 했다. 역시 개별화를 통한 차이도 그 문화를 알아야 가능했다. 지금 무대 위에서 부르는 가수들의 노래는 다 똑같이 들렸는데 분명 제목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다 달랐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특정 부분에서 환호를 했다. 우리가 가수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전율을 하고 "워~~"하고 소리 지르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우리만이 그 부분이 전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인지 깨닫지 못할 뿐이었다. 피곤하고 지겨웠다. 


가수들의 노래가 끝나고 이제는 자이살메르 주민들의 노래자랑 시간이었다. 여기에서는 차별성이 느껴졌다. 확실히 가수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실력 차이는 존재했다. 한 주민이 열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든 전기가 다 나가고 주위가 암흑으로 변했다. 인도에서 전기와 수도가 공급을 멈추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15분 정도 어둠 속에서 멍하니 기다렸지만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빠져나가려는데 갑자기 사람들의 야유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불이 다시 들어오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야유는 우리를 향한 것이었다. 우리가 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지않고 나가려하자 집단적으로 야유 소리를 내서 우리의 행동을 제지하려는 것이었다. 그 야유 소리는 군중 속을 완전히 빠져 나올 때까지 계속됐다. 집단 압력은 어디서나 존재하는 거였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아마 그 야유 소리에 다시 자리를 앉았을지 모른다. 어쨌든 사리 사이로 살이 삐죽 튀어나온 여자들을 보고 그들이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거나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인도 여자들의 외모는 우리나라의 미적 기준으로 봤을 때는 미녀다. 커다란 눈, 짙은 쌍꺼풀, 높은 코, 작은 얼굴. 하얀 피부가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예쁘다. 나는 그들의 눈이 크고 짙어서 눈 쪽이 새까맣게 보이는 건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다들 아이라이너를 그리고 다녔다. 아기들도 아이라이너를 그려서 '어머, 얘네는 아기들한테까지 눈에 메이크업을 해?'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악귀를 쫓기 위한 의식이었다. 아이들은 아닐지 몰라도 인도의 여자들은 그 크고 짙은 눈에도 색조 화장을 하고 더욱 아름다워지기 위해 애썼다. 아무리 가난한 거지라도 귀에는 귀걸이, 팔에는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시장 노점상의 각양각색의 립스틱과 아이라이너 판매대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팔찌나 귀고리도 화려했다. 그들은 얼굴이 어두웠기 때문에 우리나라 여성들이 은이나 백금을 선호하는 데 비해 황금색을 좋아했다. 사리도 평소에 입고 다니는 것은 초록색이나 하늘색, 노란색 등 평범한 색깔이었지만 행사 때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입는 사리는 반짝 반짝 빛이나는 장신구를 많이 달아 눈이 부셨다. 한복이 단아한 멋을 자랑하는 것과는 반대되었다. 우리나라의 화려함이 기품있어보인다는 표현이 어울리면 그들은 눈 부시게 화려했다.건물들도 우리 나라의 궁들이 웅장하면서도 정갈한 멋이 있다면 그 곳은 크고 화려했다. 타지마할 역시 대리석으로 만든 그 하얀 성은 눈부심 그 자체였다. 인도는 화려하고 눈 부신 곳이었다. 사람부터 건물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인도에 도착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