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도 학원 가서 돈 내고 배우는 세상이다.
줄넘기를 돈 내고 배운다고?
그렇다.
많은 아이들이 태권도 학원에 줄넘기를 배우러 간다. (줄넘기 전문 학원도 있다)
태권도 관장님들은 태권도뿐만 아니라 줄넘기 수업도 하신다.
리코더는 피아노 선생님께 배울 수 있다.
모든 게 다 돈이다. 선행이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아이를 보고 줄넘기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줄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이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넘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줄넘기 동영상을 보면서 어떻게 알려주면 아이가 쉽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아이는 한 번을 넘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줄넘기 말고 자전거를 타자.
아이는 점점 더 통통해지고 우리는 자전거를 샀다.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탔다. 운동장을 빙글빙글 몇 바퀴나 돌았다.
학교에서 어느 날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했다.
한 번도 못 넘는 아이가 둘 뿐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여겼다.
학교 체육시간에 배우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해 겨울 방학, 코로나로 모두가 몸을 사리던 때에 줄넘기를 배우기 위해 태권도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에서 줄넘기를 한 첫날, 관장님이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연달아 세 번을 넘는 아이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이게 사교육의 힘인가!
몇 달을 가르쳐도 안되던 줄넘기가 단 하루 만에 되다니.
고작 세 번 넘은 것뿐이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넘지 못하던 아이가 1시간도 안 돼서 세 번을 연달아 넘었다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태권도 관장님들은 뭔가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는 3년째 태권도를 다니고 있다.
지난주에는 이중 뛰기 (일명 쌩쌩이)를 연달아 20번 성공했다고 들뜬 얼굴로 자랑한다.
음, 다른 애들은 학원에 안 다니고도 이미 2학년 때 이삼십 개씩 연달아 뛰었던 그 이중 뛰기.
하지만 어쩌겠나. 엄마를 닮아서 운동신경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것을.
엄마는 초등학생 때 이중 뛰기 20번은커녕 2번도 못 넘었는데.
문득, 나 어린 시절에도 줄넘기 학원이 있었다면 나도 이중 뛰기 10번 정도는 넘을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뛰어난 운동신경도 좋지만, 3년 동안 꾸준히 다니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아이의 모습도 값지다고 느꼈다.
줄넘기를 돈 내고 배운다고?
영유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 생각만큼이나 학원에서 줄넘기를 배운다는 게 어이없는 일 같았다.
어느 날, 음악시간에 리코더 불기를 배웠는데 삑삑 소리만 난다고 한다.
다른 애들은 다 잘 분다고 한다.
리코더는 피아노 학원에서 가르쳐 준다는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문의를 해봐야 하나 싶었다.
이러다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학원을 다니면서 배워가야 할 판이었다.
머리가 아팠다.
학교에서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숙제도 없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독서록과 글쓰기가 전부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왜 이렇게 많은 학원을 다녀야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미리 다 배워가야 하는 건지.
선행은 왜 이렇게 빨리, 많이 해야 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독서가 제일 중요하다고, 책만 많이 읽으면 된다고 하더니.
이제는 또 책을 많이 읽는 것과 국어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건 다른 문제라고 한다.
그러니 국어 학원에 다녀야 한다고 종용한다.
수학만 잘해서는 안된다고, 수학 다음은 과학이라고 말한다.
엄마인 나조차도 머리가 빙글빙글 돌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가지 않을 용기나 배짱이 내게는 없다.
몇 학년 때 뭘 배우는지 미리 알고 그전에 배워가야 한다.
학교에서 배우게 될 모든 것들을 미리 준비한다.
대체 왜?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걸 학원에서 미리 배우고 가야 한다면, 대체 학교는 왜 가는 거지?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각자의 스케줄대로 흩어져 바삐 움직인다.
학교는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가는 곳이 되었다.
쉬는 시간에 잠깐씩 놀기 위해 가는 곳이 되었다.
그마저도 고학년이 되면 학원 숙제를 하느라 쉬는 시간도 못 논다는대.
학교에서는 시험도 보지 않고, 숙제도 없다.
공부 잘한다고 칭찬해 주거나 상을 주지 않는다.
공부 못한다고 혼내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교육열은 펄펄 끓어오르는 걸까.
아직 초등엄마인 나는 잘 모르겠다.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겠지.
나의 무지가, 나의 불안이 혹여 내 아이를 들들 볶아대는 건 아닌지.
내 아이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종종 뒤돌아본다.
나도 아이가 학원에 안 갔으면 좋겠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실컷 놀다가 집에 와서 여유롭게 책도 읽고 일찍 잤으면 좋겠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나도 아이와 함께 TV도 보고, 놀고 싶다.
주말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다.
하지만 용기 없는 엄마는 오늘도 안쓰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학원 버스에 아이를 태운다.
이제 조금만 버티면 방학이다.
각종 방학 특강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번 겨울방학은 그냥 느긋하게 보내볼까 한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방 안에서 군것질하며 책 읽는 게 최고니까.
밖에는 휭휭 찬 바람이 불고, 우리는 따뜻한 이불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책을 봐야지.
엄마, 이제 리코더 소리가 잘 나요.
학교 음악 수업이 있던 어느 날, 집에 온 아이가 말했다.
오롯이 학교 수업만으로 리코더 불기에 성공한 아이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