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유치원에 대한 소회
Don’t speak Korean!
영어 유치원 2년 차가 되자 원내에서 아이들이 한국말하는 것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는 처음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금세 적응해서 친구들과 영어로 얘기하며 놀게 되었다.
아이를 영유에 보내기 전에는 애들끼리 놀이터에서 영어로 놀게 한다거나
엄마들이 아이에게 영어로 얘기한다는 말을 들으면
‘한국에서 참 가지가지 한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하면서 애들한테 영어를 가르쳐야 되나?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모르고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한테?
나는 영유에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엄마들이 영어로 아이들에게 말을 하고,
가나다라도 모르는 애들이 알파벳을 배우고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솔직히 나는 영어유치원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만 해도
아이한테 비싼 전집을 사주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엄마들을 극성스러운 엄마들이라 여겼다.
아기가 100일이 되었을 무렵, 나는 고가의 전집을 결제하고 있었다.
백일 이면 입으로 물고 빨고 할 때이니 중고는 안돼. 새것으로 사야지.
그렇게 나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두 질의 전집을 들였다.
책들을 바닥에 흩뿌려 두었다.
아이는 기어 다니면서 책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
북북 찢고 입으로 물어뜯었다. 그대로 두었다.
찢고 낙서해도 괜찮아. 지금 너의 장난감은 바로 이 책들이니까.
전집 사는 엄마들을 비웃던 나는 아이가 돌도 되기 전에 전집들을 사들였다.
바보 같고 극성스럽다고 비웃던 행동을 내가 하게 되면서 나는 조금 겸손해졌다.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동네에 있는 영어 유치원들을 다니며 상담을 받았다.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영유부터 지역의 오래된 개인 영유까지.
가보면 다 좋았고, 설명을 들으면 혹하고 넘어갔다.
기준이 필요했다.
나름대로의 선택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곳을 찾았다.
영유에 부정적이었던 나는 그렇게 아이의 첫 기관으로 영유를 선택했다.
아이가 잘 적응할까?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
점심은 잘 먹을까? 화장실은 잘 갈까?
아이와 처음 떨어져 보는 나는 모든 게 다 걱정되고 신경 쓰였다.
하지만 정작 적응이 필요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로비에서 원어민 선생님들과 마주칠 때마다 혹여 말이라도 걸까 무서웠다.
가볍게 하는 인사조차 긴장되었다.
결정적인 건 여섯 살이 되자 원내에서 영어로만 대화를 하게 한 것이었다.
이 규칙은 유치원 밖에서도 이어졌다.
아이는 유치원 친구들과 놀 때는 그곳이 어디든 무조건 영어로만 말해야 했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아이가 한국말로 대답하면 곧바로 “Don’t speak Korean. “이 나왔다.
나는 전전긍긍했다. 내 아이가 한국말을 하면 어떡하지?
영어를 못하는 나는 다른 엄마들의 눈치가 보였다.
“Don’t speak Korean.”은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의 보잘것없는 영어 실력이 비웃음을 살까 겁이 나 되도록 말을 아꼈다.
영어 못하는 엄마는 힘들었다.
예전에 싫어했던 모습들을 내가 하고 있었다.
어설픈 영어로 아이한테 말을 하고, 아이들끼리 영어로 놀게 하는 모습.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예전의 나처럼 속으로 ‘참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영유에 보냈으면 거기에 맞춰서 해야지 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철두철미한 엄마들 덕분에
내 아이도 영어 실력이 많이 늘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처럼 영어도 못하고 물러터진 엄마들뿐이었다면 마냥 즐겁게만 다녔겠지.
뭐든 한 단계 도약하려면 힘든 고비를 넘겨야 한다.
그게 영어유치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언젠가 아이가 물었었다.
다른 유치원 친구들은 한국말하는데 여기는 왜 하면 안 돼요?
그건 이 유치원 안에서의 룰이니까.
근데 왜 밖에서도 영어를 해야 돼요?
여기 친구들과는 영어로 말하는 게 룰이거든.
그렇게 대답해 주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엄마도 잘 몰라. 그런데 그렇게 해야 영어가 빨리 늘고 좋아진대.
대신 엄마랑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얘기하자.
아이 교육에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엄마들을 보면서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있었다.
나도 엄마지만 다른 엄마들이 무섭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결코 ‘극성스럽다’는 한마디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나 세심하게 자신의 아이를 관찰해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인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의 시간이 필요한 일인지,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엄마인 나는 여전히 영어를 못하지만, 이제 눈치 볼 일은 없다.
“Don’t speak Korean. “이란 말을 들을 일도 없다.
다행히 아이는 영어를 좋아하고 즐겨한다.
나처럼 영어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럼 됐지. 나의 목적은 달성됐다.
학교 영어 일 등급이 영유의 목표는 아니었으니까.
유치원 시절, 그때는 힘은 일도 많았지만 지금은 좋은 추억이 되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선택한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거다.
주눅 들고 눈치가 보인건 엄마인 나지 아이가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