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멀티플레이가 안 되는 나란 사람
매일 자기 전, 다이어리에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을 적었다.
대략 하루 네다섯 가지 정도의 일들이 늘 있었다.
그 다이어리는 어느 순간부터 깨끗해졌다.
굳이 적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활이 굉장히 단순해졌다.
아이가 등교 후 글을 쓴다.
아이가 집에 오면 책을 읽거나 집안일을 한다.
아이가 학원에 가면 글을 쓴다. 혹은 장을 본다.
아이가 집에 오면 저녁 준비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아이가 자면 글을 쓴다.
새벽에 잔다.
3개월째 반복되는 패턴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다이어리를 펼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언제부턴가 나는 일주일마다 하던 스터디도 나가지 않고 있다.
야심 차게 신청했던 동네 도서관의 독서마라톤은 진작에 포기했다.
심지어 논문은...
"나 퇴직하기 전에는 논문 마무리 하자. 네 논문을 마무리 지으면 내가 정말 뿌듯할 거 같다."
"네."
이렇게 잠정 중단상태다.
그날, 논문 얘기 때문에 교수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깨달았다.
나는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이구나.
좋게 말하면 한 가지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인 건가.
오늘 아침, 추워진 날씨에 옷을 껴입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벌써 겨울이 되었네.
여름, 가을을 지나는 동안 단순화된 생활.
즐겁다. 힘들다. 아니, 즐겁다.
즐겁다가 힘들다가 슬프다가 또 즐겁다.
<이미지 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