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읽으면서.
근 20여 년 만에 다시 읽는 삼국지는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다.
(이 놈의 몹쓸 기억력 때문일까)
20대의 나는 조자룡을 제일 좋아했었는데.
지금 읽어도 그의 첫 등장은 멋있다.
... 조자룡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말을 달려 국의를 뒤따라온 원소의 군사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왼쪽을 찌르고 오른편을 베며 나아가는데 마치 사람 없는 풀숲을 헤치고 가는 듯했다.
-삼국지2 p.113중에서-
사람 없는 풀숲을 헤치고 가는 듯하다니!!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선봉이 주춤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조자룡이 물속에서 치솟은 신룡처럼 원소의 눈앞에 나타났다.
원소 곁의 궁수들이 급히 활에 살을 먹이는 순간에도 조자룡은 잇달아 네댓 명의 장수를 쓰러뜨려 원소의 중군을 흩어놓았다.
-삼국지2 p.114 중에서-
조자룡은 공손찬을 보호하며 개미 떼 같은 원소의 군사들을 헤치고 간신히 본진이 있는 다리 곁으로 물러났다.
-삼국지 2p.115 중에서-
그리고 이어지는 유비와 조자룡의 첫 만남.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삼국지 속 인물인 조자룡의 첫 등장이었다.
의외의 인물은 여포였다.
여포가 이렇게나 무공이 뛰어난 인물이었나.
게다가 수려한 용모의 사내였었나.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었다.
내 기억 속 여포는 그저 의리 없는 간신배 스타일의 남자였는데.
그 외에 손책, 태사자 등 전혀 기억에 없었다.
이렇게 멋있는 인물들을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싶을 만큼 매력 넘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남편에게 물었다.
"여포가 잘 생겼어?"
"우락부락하지. 엄청 덩치 크고."
"근데 여기서는 잘 생겼다고 나와. 초선이랑 같이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는데? 싸움도 엄청 잘해. 손책도 엄청 잘 생겼대."
"하지만 손책은 결국 죽어."
"그래? 작가가 잘 생긴 장수들은 다 죽이는 거 아니야?"
잠시 삼국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쑥,
"세 번째 글은 사극으로 가 볼까?"
남편에게 물었다.
"그럼 무협이 되겠지."
남편이 대답했다.
"음...."
나는 무협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다시, 삼국지를 읽는다.
"내가 바로 손책이다. 나를 잡으러 왔다니 너희 둘이 한꺼번에 덤벼보아라. 하나도 두렵지 않다. 만약 내가 네놈들을 겁낸다면 천하의 손백부가 이니다!"
"너희야말로 한꺼번에 덤벼라. 나 또한 조금도 두렵지 않다."
태사자는 그렇게 응수하며 바로 창을 내밀어 손책을 찔러 갔다.
손책도 창을 들어 그런 태사자를 맞았다. 누가 끼어들고 자시고 할 틈도 없는 접전이었다.
-삼국지3 p.90 중에서-
손책과 태사자의 만남. 설레잖아!!
둘이 지금은 적이지만 곧 손을 잡겠지?
흐뭇하게 책장이 넘어간다.
그리고 여전히,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비에게는 정이 가지 않는 나.
유비의 지나친 겸양이 밉살스러워 보이는 건 내가 아직 덜 성숙한 인간이기 때문일까.
아직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으니, 더 읽다 보면 유비가 좋아질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