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향의 수필「그믐달」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국어 문제집 지문으로 나온 그믐달을 읽고는 문제를 풀 생각은 안 하고 그 글에 매료되어 책장을 찢어 간직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볼 일은 좀처럼 없었는데, 그 글을 읽고 나서는 그믐달을 보기 위해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는 했다.
내가 한 많은 사람이 아니어서인 건지.
그믐달은 좀처럼 내 눈에 띄지 않았다.
언제였을까. 우연히 나는 그믐달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까만 하늘에 처연하게 앉아 있는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믐달」이 떠올랐다.
그처럼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믐달에 대해 묘사한 글은 없으리라.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믐달은 숨바꼭질하는 아이 같다.
술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낮은 곳에 몸을 숨긴 말간 얼굴.
또 어떤 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지치고 고달픈 누군가가 찾아와 걸터앉는 다면 자신의 남은 온기를 나누어 줄 것만 같다.
그에게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와서 쉬다가 기운을 찾아 떠나간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다.
내게 그믐달은 그런 달이다.
그믐달을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앉아 있고 싶다.
그네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던 어린 시절처럼.
그믐달은 묵묵히 밤하늘을 지키고 어린 별들을 따뜻한 어둠으로 덮어준다.
그리고 어느 슬픈 사람의 넋두리를 묵묵히 들어준다.
모든 걸 다 조용히 들어줄 것만 같은 달이 그믐달이다.
누군가 밤하늘의 그믐달을 찾는다면, 그는 무엇을 바라 그믐달을 찾는 것일까.
그믐달은 낮은 곳에 조용히 앉아 아래를 내려다본다.
땅 위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들을 듣고, 그들의 모든 것을 본다.
그리고 조용히 그 모든 것들을 품어준다.
나는 조용히 달을 올려다본다.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별들을 찾아본다.
그들이 품고 있는 수천수만 년의 이야기들이 쏟아져내린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그믐달을 잊지 못하고 있다.
별들을 어둠으로 품고 낮은 곳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위고 말간 그믐달이 좋다.
말갛게 여윈 그 모습이 좋다.
그믐달의 어떤 점에 나는 매료되었을까.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그믐달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때로 그믐달은 불길하다는 오해를 받고 쫓겨나기도 했겠지.
아무도 봐주는 이 없이 외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겠지.
그래도 왠지 그믐달은 덤덤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 같다.
그에게는 별들이 있고, 어느 날엔가는 자신을 올려다 봐 주는 별빛 저럼 빛나는 맑은 눈동자들도 있었을 테니.
그렇게 그믐달은 언제나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