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탄 흡혈귀>
2023년 12월의 어느 흐린 날.
분명 그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인 마지막 날.
우리는 즐겨가는 카페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한다.
한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
밤이 되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달력의 숫자가 바뀌어 있겠지. 그뿐이다.
아이는 카페에 앉아 밀린 숙제를 하고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다.
12월의 흐린 날에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를 읽는다.
제목도 내용도 연말과 어울리는 내용은 아니지만.
마지막날에는 밀린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고 설날에 먹을 음식을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무엇도 하지 않고 우리가 즐겨 가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며 하루키 씨의 오래된 이야기를 읽고 있다.
<택시를 탄 흡혈귀>를 읽고 문득, 우리가 지난여름 비 오는 늦은 밤 탔던 택시의 기사님이 흡혈귀는 아니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비 내리는 간사이 공항. 가까스로 잡아 탄 택시.
빗길을 뚫고 시내로 향하는 길.
익숙지 않은 외국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그는 아마도
‘이들의 피는 그른 것 같군. 너무 피곤에 절어있으니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한해의 마지막 날. 나는 카페에 앉아 하루키 씨의 글을 읽으면서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어쩌면 그날 우리는 오사카의 아주 친절한 흡혈귀의 택시를 탄 것일지도 모른다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흐린 하늘이다.
커피는 식었고 이제 우리는 집으로 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