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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벽 3시

드디어 쓴 1화

by 차분한 초록색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여러 이야기들 중 그 어떤 것도 아닌 생뚱맞은 이야기가 빈 화면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새벽 3시.

1화를 쓴 나는 노트북을 닫았다.

드디어 1화를 써냈다는 만족감보다는 이 이야기를 휴지통으로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임이 더 컸다.

하지만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도 내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던 걸지도 모르니까.


나 너무 오래 이 안에 갇혀 있었어.

나부터 먼저 꺼내 줘.


이야기가 나에게 손을 내민 건지도 모른다.


나는 저 아래에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이야기 하나를 끄집어냈다.

너무 오랜 시간 햇빛도 보지 못한 채 갇혀 있던 이야기는 눈이 부신 듯 잔뜩 찡그린 얼굴로 휘청거린다.

비쩍 마른 몸과 창백하다 못해 파리한 얼굴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흠칫, 나는 손을 떨면서 악수를 청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이야기가 살짝 손끝을 잡았다 놓는다.


옅은 한숨을 내쉰 이야기는 피곤하다는 듯 의자에 걸터앉았고, 나는 그 혹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노트북을 닫았다.


지금, 이야기는 내리 잠을 자고 있다.

밤이 되면 그 혹은 그녀는 다시 일어나서 내가 준비해 둔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겠지.

나의 손끝에서 조금씩 살이 오르고 혈색이 도는 얼굴이 된 이야기가 어느 순간 문을 열고 햇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 있게 되길.





<이미지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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