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애는 상산 조자룡
작년 12월부터 읽기 시작한 삼국지가 끝났다.
꼬박 몇 시간을 앉아 읽은 날도 있고, 며칠이나 손에 잡지 않은 날도 있었다.
아주 천천히 띄엄띄엄 읽었다.
글을 쓰다가 쉴 때, 쓸 얘기가 떠오르지 않을 때 삼국지가 나와 함께 있었다.
오래전,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조자룡이었다.
왜 좋아했을까.
이유는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그가 홀로 유비의 갓난 아들을 구해내던 장면뿐이었다.
이제, 20여 년이 흘러서 다시 읽은 삼국지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여전히 조자룡이다.
내가 이래서 이 인물을 좋아했었구나.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건 뭐, 그냥 해결사다.
아무리 위기에 몰려있어도 조자룡이 나타나면 해결된다.
관우도 장비도 모두 죽고.
그의 아들들이 전장을 누빈다.
"짐이 이곳에서 죽어야 한단 말인가!"
오병에게 쫓기며 진퇴양난에 빠진 유비가 외쳤다.
장포와 관흥이 죽을힘을 다해 싸웠지만 뚫고 나갈 수 없었다.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고 괴로운 탄식만 거듭하고 있을 때 홀연 앞쪽에서 함성이 크게 일며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주연의 오병을 짓두들기며 개골창과 바위 언덕 아래로 던져버리고 선주의 어가를 구하러 오는 것은 반갑게도 촉군이었다.
선주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그쪽을 보니 앞선 장수는 다름 아닌 상산 조자룡이었다.
(중략)
육손은 조운이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자 얼른 군사를 뒤로 물리었다. 조운은 그 기세를 타고 물러나는 오병을 들이치다 문득 적의 장수 주연을 만났다. 주연이 겁내지 않고 맞섰으나 그는 조운의 적수가 못 되었다. 조운은 한 합에 주연을 찔러 말 아래로 떨어뜨리고... 선주를 구해냈다.
-삼국지 9권 p.38
후훗, 그는 늘 이런 식이다.
조운은 말 한 마리 창 한 자루로 적진을 좌우로 휩쓸고 다니는데 마치 사람 없는 들판을 내닫듯 했다.
-삼국지 9권 p.249
이때 그의 나이 일흔이다.
"조운이 길목을 지키고 있어 감히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 영용함은 예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놈들, 어디를 가려느냐? 조자룡이 여기 있다!"
그 소리에 놀라 위병 중 백여 기가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나머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두 구르듯 말에서 내려 산등성이를 기어 넘고 달아나버렸다.
-삼국지 9권 p.366
존재만으로도 적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내 너의 목숨을 붙여줄 테니 돌아가 곽회에게 일러라. 어서 빨리 뒤쫓아오라고. 나는 여기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겠다!"
(중략)
조운은 촉군의 수레와 병기, 그리고 다수의 인마를 호위하며 무인지경 가듯 한중으로 돌아갔다. 길 위에 쌀 한 톨 떨어뜨리지 않은 완벽한 철수 작전이었다.
-p.367
싸움에서 물러날 때조차 이러하다.
그런 그가 9권 말미에 죽음을 맞았다.
생각하면 삼국지 전편을 통해 조운만큼 고루 갖춘 장수도 드물다. 그는 장수로서 일생 패배를 몰랐고 신하로서도 한 점 티를 남기지 않았다.
-p.395
네. 맞아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이러니 내가 그를 좋아했을 수밖에.
여전히 제일 좋아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