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이제는 아예 손 놓고 지낸 지 며칠째다.
그동안 미뤄뒀던 이런저런 약속들로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며 아이와 함께 초등학생만큼의 잠을 잤다.
왜 이렇게 안 써질까?
왜 자꾸만 지우고 고치고 반복할까?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다.
아니다.
오히려 뒷걸음질이다.
투고했던 원고에서 한 회차 분을 도려냈으니 분량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밥을 먹으면서 즐겨 듣는 웹소설 작가의 유튜브 채널을 본다.
그냥 일단 써!
나보다 한참 어린 아저씨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한다.
잘하려고 하지 마. 재미있는 구간이 있으면 재미없는 구간도 있는 거지.
밥을 먹고 난 후, 그래도 글이 써지지 않아서 책을 잡는다.
책의 글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에게 반려를 준 어느 출판사의 피드백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묘사를 좀 더 많이 해보세요,라고 했던가.
어미가 ~했다,라고 끝나는 게 많아 흐름이 끊긴다.
적절한 접속사를 이용해 보세요.
그때부터 책을 읽을 때면 본다.
나는 이쑤에 관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우리는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우리 주변을 얼음처럼 투명한 물건이 한 겹 에워싸고서 여기저기 마구 떠돌고 있었다.
우리 몸에 불이 붙자마자 자유롭게 활활 타올랐다.
우리에게 생명은 이처럼 가벼운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 눈에 우리 존재는 한 겹 연기나 먼지 같은 것이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악녀서 p.47
이래서는 이도 저도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불안이 엄습한다.
'내 글 구려병'이 심하게 온 거다.
뭘 써도 형편없어 보인다.
할 일 없이 인터넷을 기웃거린다.
누군가, 너무 잘하려고 하는 게 문제다.
잘하려고 하지 말라,라는 말을 한 게 눈에 띄었다.
내가 지금 너무 잘하려고 해서 이런 걸까?
근데 어떻게 그 마음을 버리지?
그래, 어차피 나는 별 볼일 없는 신인이고 고작해야 무료연재 세 편 완결이 경험의 전부일 뿐이야.
그런 주제에 뭘 얼마나 잘 쓰겠다고 매일 썼다 지웠다 반복인가.
어차피 출판사에서 나에게 거는 기대 같은 거 없어.
잘 되면 감사한 거고, 안 돼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거야.
매일 같이 찍어내는 수많은 글들 중 하나일 뿐.
뭐 대단한 걸 쓰려고 애쓰지 마.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나아지나?
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씁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젯밤 쓴 글도 날려버려야 하나?
아니, 그러지 말자.
우선은 쓰고, 머릿속에 들어있는 사건 사고들을 그냥 막 터뜨려 보자.
<이미지 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