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오사카 여행
우리는 나라역에서 난바행 킨텐츠 선을 탔다.
이번 목적지는 츠루하시(鶴橋).
어떤 장소에 스토리가 덧입혀지면 그곳은 특별한 곳이 된다.
내게는 츠루하시가 그렇다.
사실, 그곳에 어떤 대단한 추억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한국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 한국인 가게가 많은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곳에 특별한 스토리가 생긴 건 소설 <파친코>를 읽게 되면서였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내가 살던 동네와 그리 멀지 않았다)
일종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되었다.
예전의 한 일화가 떠올랐다.
내가 일하던 회사에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주부였다.
그중에 한국인 언니가 한 명 있었다.
제주도가 고향이라고 했던 언니는 재일교포와 결혼해서 오사카에 살고 있었다.
언니는 파트타임 직원 중에 누구누구도 재일교포인 것 같은데, 절대 티를 내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아이들은 귀화를 신청해야 할 것 같다고 했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들었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츠루하시라는 곳에 뭔가 더 진한 스토리가 덧입혀졌다.
그때 그 언니는 잘 살고 있겠지?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본다.
또 하나의 일화는 파친코에 대한 기억이다.
처음 일본에 도착해서 가본 곳 중 하나가 파친코였다.
엄청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소리의 파친코가게 안에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도 게임에 열중해 있었다.
그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파친코를 처음 해 보는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첫판에서 돈을 딴다고 하니,
한 번 해보라는 권유에 얼떨결에 자리에 앉았지만 열에 한 명 돈을 잃는 사람이 되었다.
역시 난 도박에는 영 재능이 없다.
일요일 아침마다 일본어 수업을 들으러 집 근처 주민 센터를 다녔다.
이른 시간인데도 늘 길게 늘어선 줄이 있었다.
그중에는 밤을 새운 듯 바닥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파친코 가게가 문을 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나에게 오사카는 파친코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파친코 사업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재일교포라는 말을 들었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 힘들었고, 취직을 해도 승진에서 밀리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연스레 파친코 사업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소설 <파친코>를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수많은 애환이 깃들어 있는 곳.
나는 츠루하시에 가보고 싶어졌다.
내가 츠루하시에 가서 한 것이라고는 아이에게 소설 <파친코>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아는 척을 하면서,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은 일과 시장 거리를 돌아다닌 것뿐이었지만.
츠루하시의 고깃집 안은 뿌연 연기와 굽고 먹고 마시고 떠드는 사람들의 시끌시끌한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도 그 대열에 살짝 합류한다.
좋아하는 고기와 내장을 시킨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기다리면서 마시는 생맥주.
그 순간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이렇게 웃고 떠들며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그곳을 뒤로하고 다시 전철을 탄다.
이제 글리코상을 만나러 간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진을 찍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정말 파도처럼 밀려다닌다.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는다. 머리카락에 밴 고기냄새가 향긋하다.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일본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인파에 떠밀리듯 도톤보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