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오사카 여행
호텔 근처의 맛집을 찾아보다가 알게 된 우동집 <우바라>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먹는다는 곳
영업시간도 짧아서 (11시부터 3시까지) 시간대가 맞지 않으면 먹기 힘든 곳
내가 찾은 우바라에 대한 간단한 사전 정보.
우리는 간사이 공항에서 순조롭게 호텔에 가게 된다면 1시경에는 도착할 테니, 우바라의 우동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지난번의 호된 신고식 덕분일까.
두 번째 오사카 여행은 출발부터 매우 순조로웠다.
공항에서 곧바로 리무진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 호텔 도착.
체크인을 마치고 구글맵에 우바라를 찍어보니 호텔에서 10분 남짓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한적한 거리를 걸어 우바라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점원이 줄을 선 손님들에게 미리 메뉴를 묻는다.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무슨 메뉴를 시키는지 귀 기울여 듣는다.
여기는 카레우동이 인기가 많은가 보다.
카레우동을 먹으러 왔다가 이미 다 팔렸다는 말에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 역시도 카레우동이 몹시 먹어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뭐, 오늘은 이미 솔드아웃이니 어쩔 수 없다.
세트 메뉴 두 개와 단품 하나를 시킨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주방 앞 다찌에 앉아 우동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다.
잠시도 쉴 틈이 없어 보인다. 이래서 영업시간이 짧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에혼마치로 숙소를 정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동은 맛있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맛있는 우동을 이 가격에 맛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우동 한 그릇에 우리는 행복해진다.
소화도 시킬 겸 슬슬 걸어서 도톤보리로 간다.
가는 길에 국립 분라쿠극장을 본다.
일부러 찾아가 볼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나는 길에 마주치니 왠지 모르게 반갑다.
우리의 두 번째 목적지는 <메오토젠자이>라는 팥죽집이었다.
팥죽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오래된 (100년 넘은) 집이라고 해서 가보고 싶었다.
메오토젠자이를 한국말로 하면 부부팥죽이다.
팥죽을 시키면 두 개의 그릇에 나눠서 담겨 나오는데 이 팥죽을 부부가 함께 먹으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도톤보리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메인 거리에서 아주 살짝만 비켜 들어가면 나오는 묘한 거리에 메오토젠자이가 있었다.
가게 안에서 팥죽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비밀 얘기를 하듯 아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대화를 나눠야만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라도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 룰에 따른다.
기모노를 입은 점원이 팥죽을 가져다준다.
우리나라의 팥죽처럼 쌀알이 많아 죽 같은 느낌이 나는, 그래서 밥 대신 한 끼의 몫을 해내는 팥죽이 아니라, 따뜻한 차 같은 느낌이다.
스푼이 없다. 어떻게 먹는 거지? 스푼을 달라고 해야 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옆 테이블의 사람들을 보니 차를 마시듯 손으로 들고 마시고 있다.
역시 팥죽이 아니라 팥차 같은 녀석이었군.
팥죽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메오토젠자이의 팥죽이 맛있다며 홀짝홀짝 마신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일까.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 다니면서도 기분이 좋다.
저녁 무렵, 우에혼마치로 돌아간다.
조금 한적한 곳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천천히 구경하면서 걸어 들어가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침 호텔 근처에는 <퇴근 후 한 끼>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오코노미야끼 가게 <아지쿠라야>가 있다.
정말 맛이 있을까? 괜히 TV 보고 갔다가 실망하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오코노미야끼가 맛이 없기도 힘들지.
가벼운 기분으로 아지쿠라야로 향한다.
대기 없이 들어간다. 줄을 서지 않으니 맛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조금 밀려온다.
하지만 맛이 조금 없어도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으니,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조금 전의 불안감이 무색하게 아지쿠라야는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날달걀에 찍어 먹는 야끼소바는 아이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하루종일 돌아다닌 우리는 시원한 맥주로 모든 게 다 맛있어졌다.
다른 건 또 뭐가 있을까, 잠시 메뉴를 들여다보니 호르몬이 보인다.
우왓! 오코노미야키집에 호르몬이라니!!
대창을 시켜본다. 깔끔하게 조리된 대창이 나온다.
따뜻하게 달궈진 철판 위에 잘 구운 대창을 올려두고 먹는다.
야키니쿠 가게에서 먹는 호르몬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좋다.
분위기도 맛에 한몫했을지 모른다.
순조로운 출발로 한껏 들뜬 기분과 그와는 반대로 지칠 대로 지친 다리의 피로가 시끌시끌한 가게 안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에 섞여 시원한 맥주와 함께 넘어간다.
여기를 또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으로 즐겁게 배를 채우고 상쾌한 밤공기 속을 가르며 호텔로 돌아간다.
역시, 우에혼마치로 오길 잘했어. 도톤보리와는 상반되는 한적한 거리를 걷는다.
밤공기는 생각만큼 차갑지 않다.
내일은 어디에 가서 또 뭘 먹어볼까 얘기하면서 우리는 우에혼마치의 밤거리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