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오사카 여행
크리스마스이브, 기모노를 입어보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텐진바시스지 상점가 근처에 위치한 오사카 주택 박물관을 방문했다.
작은 민속촌 느낌의 주택 박물관은 상점가 근처의 한 건물 안에 위치해 있었다.
가기 전에 다른 이들의 블로그를 들여다본다.
기모노를 입고 오사카의 옛 거리를 재현해 놓은 곳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 그럴듯한 포토존이다.
아이와 나는 각각 마음에 드는 (이라기보다는 그곳 직원이 추천해 준) 옷을 입고 사진을 찍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본다.
의외로 주택박물관 안은 작지만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각각의 공간마다 설명서가 비치되어 있다.
분명 읽어보지 않을 걸 알면서도 우리는 한 장씩 야무지게 설명서를 챙긴다.
답답했던 기모노와 게다를 벗어버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옛날 학교의 교실이 재현되어 있는 공간이 나온다.
엄마가 어렸을 때도 이런 교실에서 이런 책걸상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고 하자 아이가 말한다.
“엄마 아빠는 진짜 뭐예요. 살아있는 역사예요?”
아이의 눈에는 우리가 아주 먼 옛날의 일들까지 알고 있고 경험한 진짜 옛날 사람인 듯 느껴지나 보다.
이제 본격적으로 텐진바시 스지 상점가를 구경하기 위해 주택박물관 밖으로 나온다.
지난여름, 그냥 지나가다 들렸던 쿠시카츠 가게 시치후쿠진(칠복신)이 도테야키로 유명한 쿠시카츠 맛집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시치후쿠진에 가서 도테야키를 먹어보기로 했다.
가게 안에는 역시나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다.
우리는 지난번과 똑같은 자리에 똑같이 앉는다.
망설임 없이 맥주와 도테야키를 주문하고, 읽을 수 있는 메뉴 몇 개를 주문한다.
음.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하게 되는 법일까. 우리의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분위기는 여전히 마음에 들었지만.
이로써 시치후쿠진에 대한 미련은 떨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을 보러 난바 쪽으로 이동한다.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이 있는 곳은 어딜 가나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온몸에 반짝이는 전구를 휘감은 앙상한 나무들을 본다.
나무는 아름답지만 힘들어 보인다. 깜깜한 어둠을 빼앗긴 나무들은 쉴틈이 없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기도 전에 우리는 지쳐간다.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고 싶었지만 어딜 가나 끝없는 줄의 행렬.
그렇게 점점 크리스마스이브가 흘러간다. 우리는 발걸음을 우에혼마치로 돌린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픈 크리스마스이브다.
"어제 먹었던 오코노미야키는 어때요?" 아이가 말한다.
그럴까?
일단 어디든지 들어가 앉고 싶었다. 배도 고팠다.
어제 갔던 <아지쿠라야>로 간다.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한다. 시원한 맥주가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진다.
열댓 명 정도의 무리가 들어온다. 젊은 남자들이다. 학생인 듯 보인다. 운동부 학생들일까?
옆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시킨다. 맥주가 나오자 다 같이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고 마신다.
왁자지껄 가게 안의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뭔가 흥겨운 분위기가 생긴다.
아, 이제 정말 크리스마스이브 같은데! 연말의 분위기가 나는데!
우리는 옆자리의 흥에 같이 젖어든다.
크리스마스이브, 우에혼마치의 오코노미야키 가게에서는 데이트를 하는 연인은 보이지 않는다.
여자 친구들끼리, 남자들끼리.
그리고 우리 같은 얼치기 관광객만이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래서 더 좋은 분위기랄까.
가게를 나설 때, 아이에게 막대사탕을 주신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귀여운 막대사탕.
호텔로 돌아간 우리는 아이를 위해 몰래 준비해 온 선물을 건넨다.
이건 엄마 아빠의 선물!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은 오늘 밤에 우리 집 트리 밑에 놓아두고 가실 거야.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들어와서 선물을 놓고 가는 산타를 상상해 본다.
크리스마스이브가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