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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USJ

2023년 12월 오사카 여행

by 차분한 초록색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 속 외딴섬과 같은 테마파크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어본다.

이번에는 곧장 해리포터 존으로 간다.

쌀쌀한 날씨에 목도리부터 산다.

해리포터 목도리를 목에 둘둘 감고는 지난번 먹어보지 못한 버터 비어를 드디어 마셔본다.

한 잔만 사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야무지게 챙겨간 헤르미온느 마법봉을 휘두르며 마법을 부려본다.

마법을 부리는 데에도 긴 줄은 필수다.

진짜 마법을 부려서 줄 없이 모든 걸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번에는 생각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다.

적어도 자판기 앞에 줄이 늘어서 있지는 않다.

보석같이 예쁜 추러스를 먹고, 이번 USJ코스 담당을 맡은 아이의 말에 따라 점심은 미니언즈 레스토랑으로 간다.

이곳에 줄은 없다.

완전 럭키! 우리는 쾌재를 부른다.

줄을 서지 않고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곳의 음식은 무조건 맛있다.

오후가 되자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비를 맞으면서 줄을 선다. 청승맞은 즐거움이다.

놀이기구 3개를 타니 어느덧 저녁이 되어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간사이공항을 왕복으로 세 번 왔다 갔다 할 만큼의 시간을 할애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익스프레스 티켓을 구입했어야 했다.

란포의 저주라도 있는 걸까.


마음을 다잡고 어둠이 내린 USJ를 걷는다.

어디선가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음악소리가 나는 쪽으로 바삐 걷는다.

무대 앞에 가득한 사람들. 멀리 무대 위에서 흥겨운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화려한 레이저 불빛. 커다란 트리가 아름답게 빛난다.



이 모든 게 그냥 다 꿈은 아닐까.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아무도 없는 작은 골방에 누워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우울한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테마파크의 화려함과 흥겨움이 주는 두려움이다.

그런 두려움이 USJ에 있는 나를 란포의 외딴섬에 있는 나와 동일시하게 만든다.


지난여름의 아쉬움을 풀기 위해 애써 다시 찾아간 섬.

우리는 미처 해결하지 못한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섬으로 들어간 탐험가처럼

힘들 것을 알면서도 USJ로 기꺼이 들어갔다.


아이는 2023년 크리스마스의 USJ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그것이 어떤 형태로 어떻게 기억되든지 분명한 건,

그때의 피곤함은 온데간데없이 즐거운 기억만이 남게 되리라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즐겁고 힘들고 지치고 그러면서도 하게 되는 수많은 것들을 하고 있겠지.

여전히 많은 캐릭터들이 방긋거리고 화려한 볼거리가 흘러넘치고 기념품샵은 사람들로 가득가득하겠지.


그곳은 누군가 만들어낸 외딴섬과 같은 곳.

한번 발을 들이면 힘들고 지쳐도 끝내 즐기게 만들고 마는 곳.

우리는 그곳을 기꺼이 제 발로 찾아가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면서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결국에는 추억이라는 액기스를 뽑아내고야 만다.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흥겨운 음악.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눈 공간과 추억.

우리가 바라보던 밤의 불빛들.

그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소중한 추억이 되어, 훗날 즐겁게 꺼내볼 수 있게 되기를.

그렇다면 외딴섬에서의 모험을 피할 이유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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