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오사카 여행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고양이 마을>이라는 단편 소설을 읽은 적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르핀 중독에 빠진 주인공이 매일 같은 길을 산책한다.
그러다 어느 날, 방향감각을 상실한 주인공은 낯선 동네에 발을 들이게 된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마을은 고즈넉하다.
이상한 기분에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도 저기도 모두 다 고양이들 뿐이다.
창문을 내다보는 것도, 가게 안에 있는 것도 모두 다 사람이 아닌 고양이.
현실로 돌아온 작가는 자신이 본 고양이 마을이 꿈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곳인지 알 길이 없다.
두 번째 오사카 여행을 가면서, 나라 역시 두 번째 방문을 하기로 한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교토나 고베가 아니라 왜 하필 나라냐고 물으면,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을 가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혼자 전철을 타고 곧잘 다니던 곳이라 친숙한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도 딱히 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교토로 수도가 바뀌기 전의 짧았던 영광의 시절이 뭔가 애달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재작년 겨울, 부여를 갔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쇠락한 영광을 끌어안고 있는 처연한 분위기.
부여는 그런 이미지였고, 나라는 그런 부여를 닮아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사슴공원과 동대사 말고 정말 고즈넉한 분위기의 나라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마이초(今井町)로 향했다.
우에혼마치에서 킨텐츠선을 타고 야마토사이다이지역(大和西大寺)에서 내린다.
그곳에서 다시 전철을 갈아타고 야기니시구치역(八木西口)으로 간다.
시간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다.
역은 사람하나 없이 한가롭다.
역 근처의 카페로 들어간다.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 밖과는 달리 카페 안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카페는 지하부터 2층까지 꽤 규모가 있었다.
이미 1층과 2층은 만석이라 우리는 지하로 안내받는다.
아무도 없는 지하에서 우리는 모처럼 여유롭게 차를 마신다.
오사카에 와서 이렇게 한적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여기는 오사카가 아니라 나라라서 가능한 걸까.
이마이초라서 가능한 일일지도.
점심을 먹기 전, 크림소다를 마시기 위해 또 다른 카페로 이동한다.
우리는 각자 하나씩 마음에 드는 색깔의 크림소다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가게 안에 가득한 책들을 구경하는 게 꽤나 재미있다.
마음에 드는 책 한 페이지에 짤막한 메모를 적어 꽂는다.
언젠가 또 이곳에 와서, 다시 이 책을 펼쳐보면 그 시절의 우리가 들어있겠지.
이마이초를 떠나기 전,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코모레비라고 하는 가정식 식당이다.
직접 키운 채소들로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영업을 하고 있는 건지 밖에서는 알 수가 없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되는지 묻는다.
테이블이 없다고 한다.
다다미방도 괜찮은지 묻는다.
오히려 좋다고 답한다.
메뉴는 3가지.
우리는 각자 1가지씩 3개의 메뉴를 주문한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라는 뜻의 가게 이름처럼 예쁜 음식들이 나온다.
맛있는 가정식을 다다미방에 앉아 먹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선다.
길은 사람 하나 없이 한적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카페든 식당이든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가득한데, 밖에 나오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환한 대낮인데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고양이 마을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쌀쌀하고 청명한 어느 날, 고양이 방범대가 낯선 세 사람의 방문을 알아차린다.
그들은 분주하게 일사천리로 움직인다.
가게에 재빨리 연통을 넣고, 미처 사람으로 변신하지 못한 고양이들은 집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다.
우리가 나가고 난 다음 그들은 다시 고양이로 돌아가 기진맥진해서 널브러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오래전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진짜로 고양이 마을에 갔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체험을 짧은 글로 남겼다.
훗날 누군가 자신과 같이 얼떨결에 고양이 마을에 발을 들이게 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누군가가 자신의 글을 읽게 되기를 바라면서.
그리하여 언젠가 그와 함께 자신들이 보았던 고양이 마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마이초가 그 먼 옛날 언젠가, 고양이들이 살던 마을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고양이들이 밥을 짓고, 차를 마시고,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며 알콩달콩 살아가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러다 그들은 사람들의 환상 속으로 밀려들어가 버리고 만다.
한가로움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가 이마이초를 다녀온 그날 밤.
마을에서는 원로 고양이들이 모여 오늘 낮의 낯선 인간 방문객에 대한 대책회의를 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적한 이마이초를 뒤로 하고 오래된 역으로 향한다.
이제 여기서 전철을 타면 우리는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간다.
그 옛날 모르핀에 중독된 한 소설가가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고양이 마을이 사실은 이곳,
이마이초는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시끌시끌한 오사카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