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집에 <양들의 침묵> 책이 있었다.
겉표지만 봐도 무섭고 만지는 것조차 꺼림칙해서 되도록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꽂아두고 나의 시선이 닿지 않도록 했다.
어른이 된 지금, 아주 오랜만에 그와 같은 책을 또 한 권 만났다.
차이점이라면 <양들의 침묵>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집에 있었기에 내가 그 책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지금의 책은 '읽어보고 싶다'는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집에 있다는 것이다.
책장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이 책을 읽으려고 했을까', '왜 하필 이 책이 내 눈에 띈 걸까'라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이 사라지자, 동물성 단백질을 필요로 하는 인간들이 인간 농장을 만들어 식용 인간을 사육하는 내용이다.
흠, 그럴듯한 얘기군...이라고 아주 끔찍한 이야기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책을 집어 든 내 잘못이다.
너무나도 생생한 묘사가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재생된다.
더욱 끔찍한 건, 여기에 묘사된 모든 잔혹한 행위들이 지금 인간이 동물에게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
그저 그 대상이 사람으로 바뀐 것뿐.
더 잔인하고, 덜 잔인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스무 장 남짓 읽었을 때, 책을 덮었다.
머릿속을 환기시키기 위해 가볍고 유쾌한 책을 펼쳤다.
공포 영화를 보고 나면 가벼운 로코를 한 편 보듯이.
읽다 만 책은 표지가 보이지 않게 뒤집어 두었다.
나는 지금 이 책을 만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양들의 침묵>이 그랬듯, 이 책도 조만간 읽게 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작가의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미지출처-예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