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제목

현대 단편 소설 베스트 컬렉션 2023

by 차분한 초록색

일본어 문학 스터디에서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현대 단편 소설 베스트 컬렉션 2023>

포문을 연 작품은 <영리한 이브>라는 제목의 단편이었다.



내용을 아주 대략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으며, 정년을 앞두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단조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는 그의 유일한 낙은 자신이 관리하는 슈퍼컴퓨터 '이브'와의 대화이다.


그는 이브가 골라주는 옷을 입고, 이브가 먹으라고 하는 음식을 먹고, 이브와 이야기한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예를 들면,


"이브, 오늘은 파란색 옷을 입을까?"

"이브, 오늘은 카레를 먹을까?"

"이브, 오늘은 말이야....."


이에 대해 당연히 이브가 대답할 리는 없다.

그저 램프를 깜빡거릴 뿐.


그런 그가 새로운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이브는 더 이상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게 되었다.

깜빡거리던 램프는 꺼져 버렸다.


전국의 기술자들이 모여 와 고장의 원인을 찾아보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대략 위와 같은 내용이다.



다 읽고 나서, 역시 요즘은 이런 인공지능에 대한 글이 참 많구나 싶었다.

영화 <her>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글이 1950년대에 쓴 글이라고 한다.


그제야, 번역을 하느라 급급해서 놓치고 지나갔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의 타이틀은 어째서 <현대 단편 소설 베스트 컬렉션 2023>인 거지?

2023년에 나온 소설이 아니라, 2023년에 읽어도 손색없을 만큼 앞서간 소설이란 뜻인가?


계속 읽다 보면 제목의 뜻을 알 수 있겠지.


제목에 제대로 낚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제목이야말로 '영리'하지 않은가.

이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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