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로 위로하는 아침

Debussy Clair de lune

by 피아노치는수달

2012년10월


인도에서의 하루하루는 비현실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같은 인종끼리도 속을 모르는게 사람인데, 별의별 나라에서 온 인턴들과 영어로 소통을 하고 일을 조율했다.

가끔 차를 타고 시내를 가거나 가까운(그래도 4시간 걸리는)도시를 탐방할수 있었는데,

가뜩이나 인도가 첫 해외여행인 나에게는 그저 모든게 낯설고 신기했다.

몇년전부터 이 인도행을 강력히 권유했던 지인은 말했다. 정말이지 삶의 생알몸을 보여주는 나라라고.

그레서 그렜을까. 괜한 온갖 사소한 말들과 행동이 내마음을 건드렸고, 하루가 멀다하고 눈물이 났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인턴이 제발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고 편지를 건넬 정도였다.

유년시절의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도 않은채 급하게 봉합만 되었고

이제와서 하나씩 하나씩 건드려져 쏟아져 나오는것 같았다.

인턴들을 지도해주는 분들은 너무나 지혜로웠고, 친절하셨다.

그분들이 나에게 질문을 하거나, 내 이야기를 듣고자 하실때마다 나는 그저 도망치고싶었다.

내가 이렇게 못되고 비뚤고 어두운 사람인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럴때마다 피아노를 쳤다. 강당에 있는 피아노는 건반이 망가져서 살살치는것만 가능했다.

장소도 그렇고해서 드뷔시를 치면 좋겠다 싶었다. 아는곡이 세곡밖에 없어 세곡을 번갈아가며 쳤는데,

특히나 달빛을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해서, 밤에 이곡을 치고있으면 한명씩 강당에 들어와 듣고가곤했다.

피아노를 공부하고 싶은데, 확신이 서지 않았다. 성공해서 과거와 단절된 인생을 살고싶은 마음도 있었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벌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서 결심이 서지 않았다. 내가 그정도로 잘 치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그러던 어느밤 이었다. 인턴들의 매니저인 마유르가 내연주를 눈을 감고 듣고있다가 조용히 다가와 얘기했다.

그도 나의 이런 마음속의 갈등을 잘 알고있던 터였다.


- 지혜, 너는 피아노를 쳐야만해.

- 하하하. 나 그거할만큼 부자가 아니여서 안돼.

- 너 그래도 피아노 해야해.

- 왜? 나 그만큼 재능도 없고 잘 치지도 않아.

- 왜냐면 너의 연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니까.


나는 말문이 막혀서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강당을 나갔다. 마유르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쑥스러웠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내 삶의 방향에 어느정도 답이 되주었고, 말도 안된다며 웃어넘기긴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12살 어린나의 소망에 진지하게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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