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고. 나는 그것에 기꺼이 잠겨 든다. 때로 슬픔에 빠져있는 것보다는 나은 위치라는 생각이 든다. 우울이란 것은 잠잠하다. 시끄럽지는 않다. 온몸에 힘을 빼고 아무렇게나 늘어뜨려진 감정이다. 그것은 고통스럽지 않다. 그런 착각을 당연시하게 한다. 아프지 않다. 아프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허기짐을 안지 않는다. 포만감이랄 것도 없다. 신체의 모든 장기들이 숨죽인 느낌이다. 머릿속엔 안개가 끼인다. 팔을 휘저으면 곧 사라질 것만 같은 짙은 안개는 금세 차올라 모든 내가 향하려 하는 방향에의 시야를 차단한다. 눈 앞의 희끄무레한 풍경은 내면의 서늘한 감각을 깨운다. 깊이에 깊이를 더해 내려가는 마음이(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물렁해지며 지니고 있던 곧은 선을 흐리게 한다. 면면은 지워지는 듯하다 곧 흩어지며 흘러내린다.
어김없이 우울이 찾아오고 나는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길 원했던 만큼 가닿고 싶은 만큼 내려간다. 그러고 나면. 수면 위로 떠오른 나는 전에 없이 깨끗하고 맑은 ㅡ 얼굴이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