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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ott Mar 02. 2021

창조의 의지

로맹가리 - 류트





내가 하려는 말은 이테면 추상에 가까운 그림이다.
이해받지 못할 언어로 홀로 떠드는 것. 일방적인 소통으로 무엇을 이해받으려 하는지. 감정적인 언어ㅡ 내가 쓰는 말에 담긴 것은 다만 그뿐이라.  그러나 아무도 나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내가 그들(현실)과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고 해도 나는 지금껏 그래 왔듯 익숙한 움직임으로의 방향을 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하려는 말들은 모든 책 속에 담겨있다.
불분명하게 갖고 있던 느낌들과 스쳐간 감각들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는 없던 감정들 눈을 감으면 보이는 풍경과 어떤 생김들. 미처 형태를 지니지 못한 사물들의 표정 또한. 미묘한 뒤틀림. 알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 또한.
책 속엔 나라는 사람이 감히 이해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내면이 고스란히 쓰여있다. 인간의 속을 직접 뒤집어 보기라도 했는지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판 것인지 세밀히 쪼개어진 시선으로 관찰된 인간이 하나의 삶이 고른 문장들로 그득 채워져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인간들은 자신이 하려는 말과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각들을 같은 말, 비슷 한 지점으로부터 무수히도 오랜 시간 끊임없이  ㅡ 같은 방식으로 그러나 같지 않은 글로 재생시켰다.




책.
그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는다.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나와 닮은 얼굴의 책 한 권 한 권을 책장에 꽂는다. 조각들. 나를 직시하고 있는 듯한 책들이 맞추어진다.  하나의 조각 나의 일부가 담겨있다고 믿는다.




 
 나는 종종 무언가를 표현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을 안는다. 그럴 때마다 로맹가리의 류트를 떠올린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손을 지닌 인간은ㅡ  아름다움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  창조의 의지를 내비치는 두 손의 떨림을 계속 안고서 살아가야 하는 부류의 인간. 현실의 손이 그것.을 구현하지 못하는 능력 밖의 인간은 불행하지 않은가.
말이ㅡ 마음의 표현을 그 전부를 대신하지 못하기에  그림이든 글이든 음악이든 어떠한 대체제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내게는 어떠한 능력이 있는 것인가. 그중 무엇 하나라도 할 수 있다면 ㅡ 완벽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바라지만 ㅡ  그중의 하나를 나의 능력이라 여길 수 있다면.
나의 우울이 그리고 헤메이는 시간이 이리도 길게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걸 확신한다.




추상. 이 깊어지기를.
그 모든 재생되어지는 것들을 감당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그것들을 모두 담아낸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의 얼굴은 무엇이 다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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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1.02. 쓰다 만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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