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려는 말은 이를테면 추상에 가까운 그림이다. 이해받지 못할 언어로 홀로 떠드는 것. 일방적인 소통으로 무엇을 이해받으려 하는지.감정적인 언어ㅡ 내가 쓰는 말에 담긴 것은 다만 그뿐이라. 그러나 아무도 나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내가 그들(현실)과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고 해도 나는 지금껏 그래 왔듯 익숙한 움직임으로의 방향을 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하려는 말들은 모든 책 속에 담겨있다. 불분명하게 갖고 있던 느낌들과 스쳐간 감각들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는 없던 감정들 눈을 감으면 보이는 풍경과 어떤 생김들. 미처 형태를 지니지 못한 사물들의 표정 또한. 미묘한 뒤틀림. 알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 또한. 책 속엔 나라는 사람이 감히 이해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내면이 고스란히 쓰여있다. 인간의 속을 직접 뒤집어 보기라도 했는지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판 것인지 세밀히쪼개어진 시선으로 관찰된 인간이 하나의 삶이 고른 문장들로 그득채워져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인간들은 자신이 하려는 말과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각들을 같은 말, 비슷 한 지점으로부터 무수히도 오랜 시간 끊임없이 ㅡ 같은 방식으로 그러나 같지 않은 글로 재생시켰다.
책. 그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는다.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나와 닮은 얼굴의 책 한 권 한 권을 책장에 꽂는다. 조각들.나를 직시하고 있는 듯한 책들이 맞추어진다.그하나의 조각에나의 일부가 담겨있다고 믿는다.
나는 종종 무언가를 표현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을 안는다. 그럴 때마다 로맹가리의 류트를 떠올린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손을 지닌 인간은ㅡ 아름다움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 창조의 의지를 내비치는 두 손의 떨림을 계속 안고서 살아가야 하는 부류의 인간. 현실의 손이 그것.을 구현하지 못하는 능력 밖의 인간은 불행하지 않은가. 말이ㅡ 마음의 표현을 그 전부를 대신하지 못하기에 그림이든 글이든 음악이든 어떠한 대체제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내게는 어떠한 능력이 있는 것인가. 그중 무엇 하나라도 할 수 있다면 ㅡ 완벽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바라지만 ㅡ 그중의 하나를 나의 능력이라 여길 수 있다면. 나의 우울이 그리고 헤메이는 시간이 이리도 길게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걸 확신한다.
추상. 이 깊어지기를. 그 모든 재생되어지는 것들을 감당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그것들을 모두 담아낸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의 얼굴은 무엇이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