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허물수는 없습니다. 견고한 구조물을 만들어내지 못한 인간이래도. 따뜻한 볕엔 슬몃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법입니다. 세상이 요지경이라고. 이젠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곧 사라질 위기라고. 아니 세상이 꽝꽝 얼어붙고야 말 거라고. 아니. 세상이 곧 화형에 처해질 거라고. 누가 누구에게 안긴 벌인가요. 인간이라는 죄. 우리는 곧 사라지고야 말 겁니다. 그럼에도 삶을 허물수는 없습니다. 나는 웃음 짓는 법을 잊지 않았습니다.
인간이라는 죄. 달게 받아야 하는 걸까요.
인간이라는 죄와 나 사이에 하나를 두었습니다. 존재의 기쁨, 어떤 식으로는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립니다.
삶은 잠깐이고 어둡게 끝납니다. 어느 해의 봄 산책로에서 들려온 음성입니다. 선교를 하는 할아버지의 계절에 맞지 않는 두툼한 갈색 정장을 기억합니다. 거멓게 칠해진 나와 갈색정장의 할아버지 사이에 신을 찬양하는 목소리는 도시의 소음을 덮습니다.
삶은 잠깐이고 어둡게 끝난다. 삶이 이토록 간결할 수 있을까요. 삶. 잠깐. 어둡게. 끝.
우리의 끝은 정해져 있습니다. 당신의 끝과 나의 끝은 다르지 않은 지점입니다.
산책로를 다 돌아 나왔는데도 그 음성은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토록 쉬운 삶이라니. 아무렴 사소한 하나에 무너질 연약함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삶을 허물수는 없습니다. 존재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함으로 스스로의 얼굴에 웃음을 띄울 수 있을까요. 자꾸만 거창한 말을 덧대고 싶어 집니다. 대 에 단 한 것. 잠시 또 부풀려지고 싶은 인간의 얼굴이 됩니다.
- 22.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