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짐 / 선, 선택

by elliott



... 아마 그는 죽음을 겁내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정말이지. 그가 위급한 상황은 겁내고 있었다고. 그의 밉살스러운 상상력은 그에게 공포가 빚어내는 모든 무서운 상황이며, 이리저리 쿵쾅쿵쾅 뛰어다니는 사람들이며, 불쌍한 비명이며, 파도에 휩쓸리는 구명정 같은, 그가 일찍이 들은 적이 있던 해난 사고의 모든 무서운 상황을 떠올리고 있었던 거야. 그는 죽어도 좋다고 체념했을지 모르나, 더 이상 공포의 상황을 겪지 말고 일정의 평화로운 몽환 상태에서 조용히 죽고 싶었을 거야. 죽으려고 모종의 준비를 하는 사례는 그리 드물지 않겠지만, 뚫을 수 없는 결심의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사람들이라도 질 것이 뻔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려고 하는 사례는 보기 어려운 법이야. 희망이 줄어들면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욕구는 점점 더 강해져서 결국은 삶의 욕구까지 정복해 버리게 되지.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 중에서 그런 것을 지켜본 적이 없다든지, 그런 극도로 지쳐버린 정서며 노력의 허망함이며 안식의 갈망 같은 것을 몸소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턱없이 큰 세력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이라면 그걸 잘 알고 있지. 이를테면 난파선에서 구명정으로 빠져나온 사람들이나, 사막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들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자연의 힘이나 군중의 우둔한 포악함에 대항해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걸 알고 있을 거라는 말일세.


로드짐 1, p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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