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다는 것 / 책의 구원

by elliott

잠이 들기 전 다시 생각합니다. 이 글은 당신에게 다가가기 위함이 아닙니다. 내내 계절이 바뀌지 않는 나의 삶은 겨울이었습니다. 잠시 비쳐드는 햇살의 온기가 그토록 따뜻한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 그 따뜻함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에. 기억하고자 하나 분명 망각할 것이기 때문에 기록의 형태로 남기는 글입니다. 기록되어진 마음을 나는 오래도록 책장에 꽂아둘 겁니다. 나의 마음이 담긴 하나의 사물이 생겨나는 겁니다. 태어나길 겨울이었고 태어나길 언 바닥, 태어나길 무심한, 태어나길 빈 마음, 태어나길 추운 아이. 따뜻한 기억을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것으로 만들어 오래도록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이제 계절이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주어진 삶의 서러움이 덜할 것 같습니다.



나는 책을 읽습니다. 책은 하나의 구원입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봅니다. 만나 본 적 없는 인물들의 생을 따라갑니다. 만나 본 적 없는 인물의 삶 그 안에서 나를 만나고 당신을 만납니다. 유럽 미국 아프리카 러시아 어느 나라의 소수민족... 대륙도 인종도 다른 우리의 삶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나요. 집이 필요합니다. 마실 물이 필요하고 맛있는 음식이 필요합니다. 더위를 피할 그늘, 추위를 막아 줄 따뜻한 목도리 털부츠가 필요합니다. 비를 피할 우산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른가요. 다르지 않다고 하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나요. 어제보다 나은 기분의 오늘입니다. 한차례의 슬픔이 지나 안정을 되찾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책을 좋아하나요. 생각해 보니 한 번도 물은 적 없습니다. 생각해 보니 더 멀리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나 멀리 있는데도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다르지 않지만 또 다릅니다. 당신은 아마 책을 좋아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말에 당신은 어떤 답을 할 건가요. 책 이야기는 조금 지루할까요. 장자, 칸트, 김수영, 비비언 고닉. 오늘은 이런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세계. 내가 바라는 구원. 존재하지 않는 하느님의 성경보다 실재했던 이들의 남겨진 언어(말들)를 더욱 신뢰합니다. 나의 신들은 실로 '존재했던' 인간들입니다.


시집은 자주 들진 않습니다. 띄엄띄엄 신의 언어를 해석한 듯한 암호 같은 말들을 깊게 바라볼 만큼 아직은, 아니 그보다 한 자 한자를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스스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김수영의 시집은 가끔 읽습니다. 옛날 사람. 흔치 않은 인간. 나는 단지 그것을 알아봅니다. 옛날 사람이지만... 오늘 마주해도 대화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비슷한 결의 사람입니다.


오늘은 그렇게 보냅니다. 실은 어제도 그렇게 보냈고, 나는 일하는 시간을 제하고는 내내 그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글자들. 글자들을 읽는 시간을 제하고 나는 이렇게 쓰는 시간으로 나의 시간을 채워갑니다.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나요. 나는 진심으로 이해받고 싶습니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사람들과의 교류를 많이 하지 않고 '홀로' 있는 것에 대해 삶의 다른 무엇에도 마음을 내어주지 않고 이렇게 살아가는 삶에 대해 어떤 격려와 위로를 받고 싶은 것 같습니다.

과거를 보지 않기 위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기억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멀리, 멀리, 오늘의 나와 어제의 그리고 미래의 두려움 가득한 눈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서, 나를 보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감은 채 달리고 있던 나는 글자들 위에서 새롭게 깨어나는 감각을 경험했습니다. 단지 도망하려던 것뿐이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를 향한 길이 나타난 느낌입니다. 나는 길이 나지 않은 숲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눈앞으로 난 길을 걷고 있습니다. 목적지가 없는 길 위에서 나는 어딘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이 되고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무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이상한 말일까요. 책을 읽으며 깨달은 가장 큰 하나입니다. 무지. 읽을수록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영영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란 사실. 그 사실을 알아버리면 책장을 덮을 때마다 울 것 같은 얼굴이 됩니다. 처음엔 엉망인 얼굴로 고개를 들어 회의했습니다.


누구보다 삶을 알고 싶었고 때문에 한 단어 한 구절. 어떠한 사물에서보다 위로를 얻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으로 남겨질 것 같은 커다란 두려움을 안았을 때의 기분이란... 절망. 절망이라는 단어가 꼭 맞을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책을 놓지 못합니다. 당신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오늘은 무얼 했나요. 나는 삶에 대해서도 당신에 대해서도 여전히 아는 것이 없습니다. 요즘 마음은 좀 어떤가요.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으니 나는 다시 책으로. 책 안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을 찾고 해주고 싶은 말을 찾고 담아야 할 말들을 찾고... 마음을 찾고 있습니다.





2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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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내 목숨야. 어제 하고는 틀려졌어. 틀려졌다는 것을 알았어.

틀려져야겠다는 것을 알았어. 그것을 당신한테 알릴 필요가 있어.

그것이 책 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모르지.

그것을 이제부터 당신한테 알리면서 살아야겠어ㅡ 그게 될까?

되면? 안 되면? 당신! 당신이 빛난다.

우리들은 빛나지 않는다. 어제도 빛나지 않고,

오늘도 빛나지 않는다. 그 연관만이 빛난다.

시간만이 빛난다. 시간의 인식만이 빛난다.

빌려주지 않겠다.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빌려주지 않겠다. 야한 선언을 하지 않고 우물쭈물 내일을 지내고

모레를 지내는 것은 내가 약한 탓이다.

야한 선언은 안 해도 된다. 거짓말을 해도 된다.

안 빌려주어도 넉넉하다. 나도 넉넉하고,

당신도 넉넉하다. 이게 세상이다.



김수영 (19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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