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안의 앱

by 루너

브리꼴레르를 주변에서 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브리꼴레르의 싹은 생각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숙련된 요리사는 재료가 없으면 다른 재료를 사용해 완벽히 대체하거나 오히려 새로운 메뉴를 창조한다. 다른 예로, 사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나는 군대에서 공구와 자재가 충분치 않음에도 어떻게든 작업을 뚝딱 해내는 부사관들을 많이 보았다. "완벽한 가라는 진짜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이들은 브리꼴레르처럼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한 분야의 달인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자신이 통달한 분야 안에서는 고도로 숙달되어 어떤 조건에서도 문제를 척척 해결한다.


달인은 일반인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달인은 문제가 주어지면 머릿속으로 해결 과정을 막힘 없이 떠올린다. 정확히 말하면, 인위적으로 '처음은 어떻게 하고, 다음은 어떻게 하고…'를 되뇌지 않고 자동으로 몸이 움직인다. 달인의 머릿속에는 어떤 변수가 주어지면 그것을 결과로 바꾸는 함수가 들어있다. 자신만의 처리 방식을 컴퓨터처럼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 속의 애플리케이션을 심리학 용어로 '심적 표상'이라고 한다. 일본의 언어학자 이마이 무쓰미는 「배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심적 표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본질을 꿰뚫는 힘, 임기응변에 강한 응용력, 보통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식별력과 지금 눈앞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의 궁극적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는 심미안. 이런 능력의 배후에 있으며, 탁월한 판단이나 행동을 가능케 하는 마음속 판단 기준을 인지과학에서는 ‘심적 표상’이라고 한다." 같은 논리로 숙달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심적 표상을 보다 세련되고 보다 양질의 것으로 길러가는 것이 숙달의 과정이다."


달인의 눈에는 눈앞의 상황이 다르게 보인다. 달인에게 사물은 단순히 사물이 아니라 어떤 작업의 재료로, 또는 가능성으로 보이는 것이다. 달인은 머릿속에 시뮬레이션, 즉 모형이 존재한다. 그래서 심적 표상의 동의어는 심성 모형이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서는 간단한 말로 심성 모형을 정의한다. "심성 모형은 외부의 현실을 머릿속에 표현한 것이다."


심적 표상은 어떻게 강화될까? 심적 표상은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이 더해져 강화된다. 이 과정을 통합이라고 한다. 기존에 가진 모형을 확장해서 새로운 것을 동일한 모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옳은 비유인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나는 통합 과정을 도시 안에 새 건물을 짓는 일로 이해했다. 예를 들어 경찰서가 없던 도시에 경찰서가 생겼다고 하자. 경찰서는 분명 다른 관공서와 기능적으로 많이 다르다. 그러나 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경찰서는 도시의 치안을 책임진다는 새로운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도시의 일부로서 똑같이 도시학을 통해 다룰 수 있다. 이로서, 경찰서는 새로운 대상이지만, 낯설어서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은 아니게 된다.


나는 브리꼴레르를 다시 정의한다. '브리꼴레르는 다방면의 통합을 통해 넓은 심적 표상을 가진 사람이다.' 브리꼴레르는 우선 자신의 분야에서 나오는 문제를 자신의 심적 표상으로 척척 해결한다. 나아가 다른 분야를 접했을 때, 자신의 분야와 비교해서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를 비교해서 심적 표상을 확장한다. 아예 새로운 심적 표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심적 표상이 발을 뻗어 새로운 곳에 뿌리내린다.


다만 브리꼴레르를 규정하는 또다른 특징이 있다. 브리꼴레르는 사유에 '중심'을 두지 않는다. 자신이 통달한 분야가 있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피어오르는 가능성을 자신의 분야의 잣대만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리꼴레르」는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리좀' 개념을 이용해 브리꼴레르의 사고를 정의한다.


리좀(Rhizome)은 우리말로 '뿌리줄기'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지금까지 서양의 사고 방식이 나무와 뿌리를 모델로 삼아왔다고 지적했다. 뿌리 없이는 나무의 생명을 생각할 수 없듯이, 서양의 사고 방식은 몇 가지 근본 개념들, 예를 들어 신이나 이데아 같은 것들을 상정하고 연역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항하고자 내놓은 개념이 리좀이다. 리좀은 '탈중심화된 사고 체계'이다. 「브리꼴레르」는 리좀의 사고 체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리좀적 체계와 사유는 하나의 방향으로 편향되지 않고 다양한 방향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는 개방적 체계이고, 인접 유관 분야의 전문성과 다양한 접속을 시도하면서 기존과 다른 전문성을 부단히 창조하는 가변적 체계다." "리좀은 갈 곳을 정해놓지 않고 내일의 접속대상을 찾아 중단 없이 이동하는 유목적 사유다. 리좀은 여기와 저기, 이 세상과 저 세상, 하나의 분야와 다른 분야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이고, 그 사이에서 경계를 넘나든다. 하나의 개념과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개념을 찾아 접목을 시도하고, 접목을 통해 탄생한 개념을 깊이 파고들어 기존 개념을 심화시키고 널리 확장해 또 다른 개념과 접목을 시도한다. 한마디로 리좀은 끊임없는 접속과 접목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생산해내고 낯선 지식을 융합해내는 부단한 창작과정이다. 그 과정은 마침표를 부정하고 언제나 다시 시작하기에 영원한 미완성이다." 중심을 자신에게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리좀은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소심심고'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


정리해보자. 브리꼴레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선 한 분야에 숙달하여 달인이 돼야 한다. 달인에서 그치지 않고, 다음으로 여러 분야로 심적 표상을 확장하기 위한 모험을 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자신이 걸어온 길에 얽매이지 않고 겸허한 마음으로 모험을 떠나야 한다. 심적 표상의 중심을 버릴 때, 즉 심적 표상의 미완성성이 완성될 때, 브리꼴레르가 완성된다. 즉 브리꼴레르가 되는 여정은 심적 표상을 갈고 닦는 여정이다.


다음 글에서는 심적 표상을 강화하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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