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적 표상은, 브리꼴레르를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일을 잘 하려면 잘 갖춰야 한다. 숙달은 심적 표상을 연마하는 과정이다. 좋은 심적 표상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저번 글에서 심적 표상을 확장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심적 표상을 도시에 비유한 적이 있다. 똑같은 비유를 들고 와 보자. 나는 도시를 관리하고 있다. 도시의 문제점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물론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건물과 시설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밀한 문제를 찾아내는 데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시를 한 바퀴 돌아봤을 때, 나는 도시의 구조를 완벽히 파악했을까? 그러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무를 열심히 살피며 숲을 아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굉장히 많은 노력이 들어서 효율적이지는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시설 전체를 보며, 어떤 것이 부족하고 어떤 점을 보충해야 하는지 한눈에 파악하는 것이다. 즉 구조 전체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다시 심적 표상 이야기로 돌아가자. 내 심적 표상이 올바른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지 바깥에서 자신의 인지를 평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인지를 평가하는 인지, 생각에 대한 생각. 이것을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한다.
메타인지라는 개념 자체는 유명하다. 학습법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와 책들은 십중팔구 메타인지를 강조한다. 대개 메타인지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라고 권한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 지 파악해서 그 부분을 집중 공략하라.' 심적 표상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고 공부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굉장히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과목과 단원이 명확히 분류된 학창 시절의 공부에는 잘 맞아도, 점점 단원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과목의 개념이 뭉개지는 고차원의 학습에는 잘 맞지 않는다. 메타인지를 모든 학습에 적용하는 방법, 즉 심적 표상을 강화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잘 설명하는 저작이 있다.
안데르스 에릭슨이 쓴 「1만 시간의 재발견」은 심적 표상과 메타인지를 다루는 법을 잘 가르쳐준다. 이 책의 제목은 '1만 시간의 법칙'에서 기원했다.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귀납적으로 추론된 법칙이다. 비틀즈,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1만 시간 이상 노력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안데르스 에릭슨에게서 나왔지만,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법칙을 소개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흔히 '1만 시간 무지성으로 노력해라!'라는 식으로 오용되는데, 1만 시간의 법칙의 골자는 다르다. 1만 시간동안 열정을 기울일 수 있도록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 1만 시간의 법칙의 골자이다. 결국 1만 시간 동안 노력하려면 우선 그 정도 노력을 쏟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고 전망이 밝은 분야를 찾아야 하고, 노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적절한 투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일만 시간의 법칙은 「아웃라이어」에서 드러난 메시지보다 노력을 강조하는 메시지로 더 알려져 있다.
안데르스 에릭슨이 「1만 시간의 재발견」을 쓴 것도 이 때문이다. 앞의 비유를 다시 쓰면, 1만 시간 무작정 노력하는 것은 도시의 건물 하나하나를 살피는 것과 비슷하다. 도시를 꾸미겠다는 큰 목표는 있지만, 도시 전체의 그림이 결여돼있다. 이러다가는 1만 시간을 기울인다고 해도 최선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안데르스 에릭슨은 '1만 시간의 연습'이라는 말 대신 '목적의식 있는 연습'이라는 말을 쓴다.
목적의식 있는 연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연습일까? 안데르스 에릭슨은 목적의식 있는 연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되 분명한 목표, 목표에 도달할 계획, 진척 정도를 추적 관찰할 수단을 가지고, 집중하여 매진하라. 아, 그리고 자신의 동기부여를 유지할 방법도 파악하라." 동기부여를 유지할 방법을 준비하라는 말은 「아웃라이어」와 겹치지만, '목표'라는 단서가 많이 붙어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실력을 키울 때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맞춘다.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이런 연습은 안타깝게도 효율이 떨어진다. 우선 자신이 잘못됐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분야의 전문가이지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습을 하다 보면 성장폭이 떨어지다가 0으로 수렴하는 구간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연습을 하다가 몸과 머리가 익숙해지는 '컴포트 존(Comfort Zone)'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일도 습관이 되면 알면서도 끊기 어렵듯이, 심적 표상에서 잘못된 부분은 스스로 고치기 어렵다. 그래서 컴포트 존을 넘는 목표를 발견하는 일조차 어렵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기준을 자신이 아닌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고, 목표는 전문가가 제시하는 것을 따라 점진적으로 올려야 한다. 핵심은 피드백이다. 자신에게 조언을 할 전문가를 우선 찾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올바른 연습을 할 수 있다. 동아리 활동 등이 좋은 예시이다. 안데르스 에릭슨은 다음과 같이 재차 요약한다. "효과적인 심적 표상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전문가의 능력을 모방하려 노력하고, 실패하면 실패한 이유를 밝히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심적 표상은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대가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은 우리가 찾는 심적 표상을 만들어줄 연습의 연장선이다."
결코 연습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연습을 많이 하되, 의식적인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뇌 속에 들어있는 심적 표상을 들여다보며, 주변의 도움을 받아 뇌를 코딩하라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박한 평가가 날아오는 것을 불쾌해하고 두려워하지만, 지적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내가 오류를 감수하고 이 글을 공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판은 메타인지의 재료이다.
지금까지 심적 표상과 이를 가꾸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나는 무엇에 대한 심적 표상을 갈고닦아야 할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나는 처음부터 내 공부를 돌아보고 개선하는 것이 목표였다. 내가 구축할 심적 표상은 공부의 심적 표상이다. 일반적인 공부 방법을 찾은 다음,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심적 표상을 구축하려 한다. 다음 글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법을 다루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