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공부 방법에 대해 논하기 전에 브리꼴레르 이야기로 시간을 많이 끌었다. 브리꼴레르라는 인재상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것이 몇 있다. 지식의 주입이 아닌 창조를 목표로 할 것. 여러 분야에 어설프게 발을 담그지 않고 일단 한 분야부터 정복할 것. 심적 표상을 염두에 두고 피드백을 얻을 것. 지금껏 얻은 교훈들을 종합한 공부법을 구축해 보자. 물론 내가 새로운 공부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공부법들을 취합하려는 것이다.
심적 표상은 생각의 지도와 같다. 원점에서 어떤 목적지로 갈 때 여러 경로를 수색하여 결국 종점에 이르듯이, 문제 앞에서 사람은 다양한 지식들을 경유하여 마지막에 필요한 지식을 도출해낸다. 심적 표상은 단순한 지식 더미가 아니다. 지식들의 연결이 심적 표상의 본질이다.
지식들의 연결은 이미 다룬 바가 있다. 브리꼴레르가 지식 편집자와 동의어라는 말을 이전에 한 적이 있다. 브리꼴레르는 지식들을 창의적으로 연결해낸다. 이 연결을 공부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사전 지식에 새로운 지식을 연결하는 과정이 심적 표상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서는 이를 '정교화'라고 정의한다. "정교화란 생소한 내용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여 기존의 지식과 연결하는 과정이다." 정교화는 이전에 소개한 '통합'과 통한다. 공부는 심적 표상을 만드는 과정이고, 지식의 심적 표상에 새 지식을 통합하는 일이 정교화이다.
통합의 이점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책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자체가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의 성과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연결하는 한 기억할 수 있는 지식의 양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다. 새로운 학습은 사전에 학습한 지식에 의존하기 때문에 많이 배울수록 앞으로 배울 내용과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진다."
잠시 심적 표상을 모르던 시절로 돌아가서 내가 공부하던 것을 살펴보자. 나는 지식들의 연결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다. 과목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공통점들을 중심에 두고 과목들을 하나로 뭉칠 생각은 못 한 것이다. 그래서 나의 공부는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하는 과정이 아니라, 익숙한 것에서 시작해서 낯선 것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공부한 것을 학기가 끝나고 하얗게 잊은 일도 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지식이 연결된 것이 아니라 잠시 단기 기억 속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장기 기억으로 가려면 심적 표상의 일부가 돼야 한다. 그러나 개별화된 지식은 심적 표상에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다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통합이었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는 통합의 위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통합은 지식이 체계적으로 굳어지게 하며, 약간 시간이 흐른 후 인출하는 경우에도 그런 효과가 있다. 그 이유는 장기 저장고에서 기억을 인출하는 행위가 기억 흔적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시 변경이 가능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근에 배운 지식과 연결할 수 있게 한다. 이 과정을 재통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공부는 외우는 일이 아니다. 지겹게 한 주제를 반복하는 일도 아니다. 그림을 완성하는 일이다. 나뭇가지에 나뭇잎을 붙이는 일이다. 다른 저서들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에디톨로지」라는 책은 공부를 '데이터베이스 관리'라고 정의한다. 「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도 정보 정리 능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것으로 공부의 성격은 완전히 역전됐다. 공부를 지식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대체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료를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료 정리에 관련해서 좋은 책들이 많이 있으니, 쉽게 방법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