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4권
「명상록」 4권은 평온에 대한 구절이 많다. 아우렐리우스가 혼란스러운 정국에 평안을 갈구하기 위해 「명상록」을 지었다면, 4권은 아우렐리우스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실려 있는 셈일 것이다.
아우렐리우스에게 황제의 자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생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위대한 인물들이 그랬고 모든 무명의 인물들이 언젠가 아우렐리우스 자신도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갈 운명이었다. 그러므로 세계, 그중에서도 국소적인 부분을 다스리는 자신은 덧없는 존재이며 자신의 명성도 덧없는 것이었다. "기억하는 자도 기억되는 자도, 다 함께 하루살이이다." 이런 염세적인 사상이 오히려 평온의 근거가 된다. 세상의 일은 일시적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삶은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역설한다. 자신의 제국 또한 일시적이다. 그러므로 아우렐리우스는 현세의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아우렐리우스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이성이다. 이성은 만인이 갖고 있다. 즉 이성이야말로 세계라는 하나의 국가의 규칙인 셈이다. 아우렐리우스의 유일한 목표는 이성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다. 어떤 것도 이성을 향하는 그의 걸음을 흔들 수 없다. 이 걸음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사물은 내면으로 비집고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내면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피난처이다. "누구나 바라기만 하면 언제든지 자기 안에 숨어 쉴 수 있다." 내면으로 침잠하지 않고 외연을 신경 쓰는 것은 마음을 어지럽힐 뿐이다. 오직 이성의 실현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훌륭한 일을 하는 데서 오는 안정뿐만 아니라, 많은 일에 관여하지 않은 안정도 가져온다.' 불필요한 일에 주의를 분산시키는 일이야말로 스트레스가 아니던가. 오직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옳은 목소리에 따르기. 이것이 아우렐리우스가 역설하는 삶의 태도이다. "그대는 이성과 정의의 힘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현재를 움켜잡아라. 그대는 쉬는 동안에도 깨어 있으라."
그러나 우리 개인이 이성에 따른다고 해도 모든 타인들이 이성에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세계의 조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세상의 많은 악을 목도하고,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아우렐리우스는 내면의 생각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이것은 불행이 아니며 이것을 용감하게 참고 견디는 것은 오히려 행운이다."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믿는다. "합리적인 동물은 서로 돕기 위해 존재하며, 인내는 정의의 한 부분이고, 사람들은 마지못해 악을 저지른다."
나는 이런 견해가 시원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런 믿음이 우리를 피해로부터 진정 보호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영혼에 아예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정도로 견고한 사람은 본 일이 없다. 이 딜레마는 철학이 시작한 이래로 해결되지 못한 것 같다. 결국 자신은 옳은 길을 갔다는 것에만 만족하는 것이 최선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