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에 관하여

「명상록」 5권

by 루너

「명상록」 5권은 첫 문장부터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거든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 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고 그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데 어떻게 그것에 불만을 느낄 수 있겠는가?"


5권은 주로 의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의무가 무엇일까? 사실 그간의 말들을 되새겨보면 쉽게 '이성을 따르는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아우렐리우스도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의무를 수행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의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국가는 의무에 대한 보상을 지급한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면 봉급을 받는 것이 그 예시일 것이다. 그런데 아우렐리우스는 의무의 대가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의무를 지키는 일 자체가 국가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무를 다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의무를 수행하는 일을 쓴 약을 처방받는 일에 비유한다. "보편적 자연이 선하다고 여기는 사물의 완성과 성취를 그대 자신의 건강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비록 그것이 불쾌하게 보이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주의 건강으로, 또 우주의 번영과 행복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우스의 관점에서 사람은 특정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특정한 상태를 지니고 태어난다. 즉 모든 것은 우주라는 커다란 사회를 위해 정해져 있다. "우주의 예지는 사회적이다." 인간은 죽기 전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파악하고 이행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이성적인 동물(인간)의 선은 사회이다."라는 아우렐리우스의 단언이 논쟁거리가 될 듯하다. 실제로 국가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사례가 많았다. 지금의 민주주의가 들어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목숨이 희생당했던가? 물론 국가에 민주화를 가져다주기 위한 희생이었다면서 그들의 죽음 자체를 의무로 돌릴 수는 있겠다. 하지만 모든 생물에게는 저마다의 삶을 추구할 의지가 있다.


다만 역사에서 '사회'의 범위가 어떻게 인식되어왔는지를 생각하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다. 아우렐리우스의 견해에 따르면 우주가 곧 하나의 작은 국가이다. 로마를 포함한 모든 국가는 자그마한 조각에 불과하다.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의무가 파편적인 국가들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위한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의무에 복종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역사가 과연 바람직하게 흘러갔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상당 부분이 권력자의 사리사욕을 위해 흐른 감이 없지 않다. 이들은 사람들의 의무,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정의를 왜곡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국방의 의무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방 체계가 오로지 국방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탐욕과 비리로 점철돼있으며, 국방을 목적으로 삼으면서 정작 병사들의 생활 여건은 너무도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게 해서 이루는 것이 결국 나라를 지키는 것보다 상급자의 이익을 실현하는 일이라면, 처음부터 국방의 의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그래서 국방의 의무에 진심으로 복종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세계에 새로운 질서가 필요함이 자명하다. 국가라는 구분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국가 안의 국민들이 올바른 조화를 이루도록 국민들의 성격을 다시 규정하고 정치 철학을 올바르게 다잡아야 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 통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사회들은 너무 멀리 와버린 듯하다.


결국 나는 나라에 대한 의무에는 완전히 충실하기는 어렵다. 대신에 내가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의무만은 소박하게나마 추구하고 싶다. 나는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결국 사회에 빚지고 있는 존재이다. 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한 나는 열심히 살고 싶다. 그러므로 아우렐리우스의 아침 묵상을 습관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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