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6권
만물을 이루는 섭리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것일까? 현대 과학은 원자론을 바탕으로 한 기계론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반면 스토아 철학은 이성을 바탕으로 한 목적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물론 현대 과학이 많은 성과를 거둔 반면 철학이 자연에 대해 유효한 예측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철학을 경시하게 된다. 그러나 목적론은 사물의 본질을 밝히는 동시에 우리에게 행동 지침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러므로 목적론을 부정하더라도 목적론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명상록」 6권은 우주의 본질에 관한 흥미로운 통찰들을 전한다.
아우렐리우스는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말했듯이 이성을 우주의 기본 원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이 이성을 따라야 한다면, 모든 인간이 획일적인 가치를 지향해야 하며 획일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어차피 "존재하는 사물은 모두 변화한다."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우주이며, 그 안의 성분들은 제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져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운동한다. 본질은 명시된 규칙이 아니다. 원리 중의 원리가 본질이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본질을 이행할 수 있다. "사물의 결함을 찾아내려는 사람들도, 이를 배척해 막으려 하는 사람들도 다 함께 협력한다. 왜냐하면 우주는 이런 사람들까지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에게 남은 문제는 그대가 어떤 부류의 협력자인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생각건대 만물을 지배하는 자는 분명히 그대를 올바른 데에 쓰고자 하나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협력자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일을 맡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우렐리우스의 사상과 전체주의를 막연히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우주의 조화를 인정하며 각자의 성분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조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국민들에게 하나의 사상과 하나의 양식을 강요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이성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휘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형태가 없다. 어떤 행동이 절대적으로 이성적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본질을 자주 잊고는 한다. 행동의 외양에만 매달려서 이성을 잘못 평가하는 것이다. 특히 명예가 결부된 경우가 혼동을 크게 일으킨다. 이성적인 행동의 보상으로 명예가 따라오다 보니 우리는 눈에 보이는 행동을 일부러 해서 명예를 산다. 아우렐리우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의 찬양을 가장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이 있을 때에, 우리는 이것을 적나라하게 눕혀놓고 그것의 무가치함을 눈여겨보아 그 사물에 대한 모든 찬사를 없애야 한다. 왜냐하면 겉모습은 이성을 강하게 유혹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후에 남을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굉장히 우스꽝스럽다. 자신과 똑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자신이 보지도 못할 사람들의 칭찬을 사는 일이 과연 이치에 합당한가? 우리는 혀에서 나오는 대중의 찬양보다 오로지 자신의 본성에 맞추어 행위 해야 한다.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온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마부는 죽음으로 동등해졌다." 자신을 위해 하는 일들은 아무리 위대한 규모로 벌이더라도 결국 끝을 보기 마련이다. 남는 것은 자신이 죽고도 영원히 남을 우주를 위해 남긴 이득이다. "저마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우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영웅으로 생각하지만 결국 우리는 우주라는 벌집의 구성원이다. "벌떼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것은 한 마리의 벌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권한다. "삶은 짧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열매는 경건한 마음씨와 사회적인 행위뿐이다."
우리는 사회 안에서 다양한 옷을 입는다. 그것들은 우리 각자에게 딱 맞게 제작된 옷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옷을 입고 각자의 일을 하며 단 하나의 목적을 따라야 한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 우리의 유일하게 바람직한 목적이다. 우리는 미약하지만 우리의 일을 다함으로써 분명 기여할 수 있다. "어느 의미에서 만물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따라서 모든 것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물은 차례대로 나타나며, 이것들은 사물들의 활발한 운동과 상호 협조와 실체의 통일성에 의존한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만물들의 본질, 그리고 우리 행위의 본질인 이성을 인식하고 작은 일을 해나가야 한다. 그런 일들은 곧 우리와 연결된 사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이성적인 행위의 연쇄들이 쌓여 물결을 일으키면, 마침내 세계에 '좋음'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아우렐리우스가 바라본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