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8권
「명상록」 8권에서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와 다른 사물 사이에는 세 가지 관계가 있다. 하나는 그대를 감싸고 있는 몸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만물이 생겨나는 근원인 신적 원인에 대한 것이며, 끝으로 그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몸과 나의 관계'는 곧 몸이 느끼는 감각과 내 혼의 관계를 의미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이 감각들이 무용하다고 주장한다. 어디까지나 사람의 중심은 영혼으로, 몸이 일으키는 것들은 영혼에 닿을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육신의 고통을 느끼며 안정과 평혼을 원하는데, 아우렐리우스의 견해로는 그런 것들은 언제든 얻을 수 있다. "모든 판단과 욕망 및 혐오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며, 어떠한 해로움도 그 안까지 파고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괴로움이나 쾌락은 대상에 대한 판단이 일으킨다. 판단을 수정하면 마음이 야기하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특히 쾌락을 선호하는 마음은 버려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이런 마음은 사물에 관한 것으로 사물을 초월하는 세계의 섭리를 생각했을 때 무용하기 때문이다. "부귀나 영화는 자만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신적 원인에 대한 것'은 곧 우주의 섭리를 얘기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우주의 섭리가 곧 만물의 유익함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이 느끼기에 해로운 사건들도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는 이롭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우렐리우스는 우주의 섭리를 알고 이것을 따라 행동하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끊임없이,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나하나의 인상이 마음속에 비칠 때마다 그 인상을 물리학과 윤리학, 변증법의 원리에 적용해 보라." 이 본질 외의 다른 것들은 곁가지이다. 억측을 더할수록 사물이 일으키는 인상은 왜곡된다. 그러므로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첫인상이 알려주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라.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다 꿰뚫어 보는 사람처럼 달관하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인관계를 말한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일관되게 "인류는 서로 상대방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래서일까? 아우렐리우스는 상대가 보이는 악의마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악의는 본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나오더라도 어떤 이치가 있어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만사가 판단하기 나름이라면,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모든 악의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우리 또한 인위적으로 우리 모습을 꾸밀 필요가 없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면 마음이 우주의 섭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하는 생각은 버려도 좋다.
이상이 아우렐리우스의 성찰이다. 내 생각에 이런 견해들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감이 있다. 마음을 달리 먹는다고 해서 상황이 변하지는 않는다. 상황은 언제든지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흔들 것이다. 그럴 때마다 「명상록」을 기억하고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아우렐리우스에게 개인적인 고초가 많았다고는 해도 결국 그는 귀족적인 삶을 향유했다. 아우렐리우스가 생애 내내 밑바닥에 살았더라면 이런 생각이 가능했을지 의구심이 든다.
다만 나는 아우렐리우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싶다. 세상사는 내 마음대로 어쩔 수 없다. "그대가 가슴 터질 듯한 괴로움에 잠겨 있다 해도 사람들은 똑같은 일을 되풀이할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세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그런 면에서 아우렐리우스의 조언은 충분히 유익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