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에 관하여

「명상록」 9권

by 루너

아우렐리우스가 일관적으로 주장하듯 이 세상의 이치가 이성이라면, 왜 사람들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죄를 저지를까? 아우렐리우스는 그 원인을 무지 혹은 무시로 본다. 우주의 원리를 깨닫지 않고 섣부르게 행동하거나, 우주의 원리를 알면서도 욕심에 지배당해 스스로를 기만하기 때문에 죄악이 생겨난다.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위해 자기 욕망을 움직이는 자는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을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았음에도 자기 게으름으로 이를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우주의 법칙과 충돌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욕망이 치는 기만의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 우리는 하는 일마다 보상을 갈구한다. 이것들은 우주의 이치를 염두에 두지 않고 개인을 앞세우기 때문에 일어난다. "악을 저지른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악하게 만들므로, 자기에게 불의를 행하는 것이다. 인간은 남에게 자선을 베풀도록 자연이 만들었으니, 그가 어떤 은혜를 베풀거나 그 밖에 공동 이익에 이바지했을 때에는, 그는 자기 본성에 따라서 행동했으므로 자기 자신의 것을 얻게 된다." 보상으로 재물 같은 것들을 요구하는 경우는 질이 나쁜 축에 속한다. 왜냐하면 재물은 일개 사물이며, 모든 물질은 부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히 일을 하다가 멈추는 것을 무서워하며, 같은 맥락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언젠가 멈추기 마련이기에 "삶의 중단이나 단절이나 변화 또한 무서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이타적인 본성을 따르면 된다. "그대의 성질에 알맞은 사회적 행위에만 운동과 행위를 한정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타인이 저지르는 죄악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우렐리우스는 관용으로 이들을 보살펴주라고 권한다. 이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자들이다. 언젠가 스러질 자신의 물질들의 운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순간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에게 그런 인식을 완벽히 제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건져내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부터 그런 사람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잘 처신해야 한다. "그대 자신이 행동을 시작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한눈 팔 것 없이 열심히 일하라."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죄의 원인이 무지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상황을 너무 잘 알고 현실을 바꿀 수 없는 것도 너무 잘 알아서, 적응의 한 수단으로 탐욕에 몸을 맡기는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다. 여러 고난을 겪었음에도 인류를 긍정적으로 본 아우렐리우스가 존경스럽다. 나도 이런 변치 않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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