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10권
아우렐리우스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우렐리우스든 누구에게든 인생이 평탄하지 않다는 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우렐리우스가 험난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취하는 자세들은 충분히 배울 점이 있다. 「명상록」 10권에서는 특히 아우렐리우스가 삶을 수용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아우렐리우스는 운명에 순종하는 일을 중시한다.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만 합리적인 동물에게만 허락되어 있다." 아우렐리우스에 논리에 따르면, 운명은 견딜 수 있는 것과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나뉜다. 견딜 수 있는 운명이라면 아무 불평 없이 본성에 따르다 보면 언젠가 감당할 수 있다. 반면 처음부터 견딜 수 없는 운명이라면 이 운명은 우리를 소멸시키고 자신도 소멸할 운명이다. 그런 운명과 싸우는 일은 처음부터 무의미하다. 결국 운명에 자기 자신을 맡기는 일이 운명과 싸우며 힘을 빼는 것보다 현명하다는 것이 아우렐리우스의 견해이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여지를 남긴다. "그대는 어떤 사물도 감당할 수 있도록 자연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그 사물을 감당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즉 운명을 받아들이는 그릇을 넓히는 것으로 운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보면 앞서 말한 무의미한 싸움도 결국 우리가 싸움을 언젠가는 포기할 운명이기에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운명을 끝까지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처방이다. "시간의 전체와 실체의 전체를 언제나 잘 살펴보라. 그리고 하나하나의 모든 사물은 실체에 비하면 오직 무화과 씨앗 하나에 지나지 않고, 시간에 비하면 나사송곳을 한 번 돌리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생각하라. 두려워하는 자도, 원망하는 자도, 또한 화를 내는 자도 도망자이다. 기억해야 할 일은, 그대를 이끌어 가는 실이 그대 마음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설득의 힘이고 생명이며, 바로 인간 자체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중요한 덕목은 '합리성'과 '침착함'과 '넓은 도량'이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모든 사물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주의하고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음을 뜻하고, 침착함은 공통된 성질에 의해 그대에게 주어진 여러 사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이며, 넓은 도량은 몸의 즐거움이나 괴로움을 뛰어넘어 명예나 죽음 및 이와 비슷한 보잘것없는 일을 초월하는 지성적인 부분의 고양을 뜻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