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 14장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니며 궁금한 점이 있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를 지옥에 보낸다면서 왜 신자들 눈앞에 직접 나타나지 않을까? 직접 눈앞에 나타나면 믿는 자들의 믿음은 강해질 것이고, 믿지 않는 자들은 믿게 될 것이다. 도마가 예수의 손의 구멍을 보았듯이, 그리고 사울이 빛을 받아 바울이 됐듯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옛 이스라엘에 직접 현현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에서만, 그리고 그때만 나타났을까? 왜 우리는 신앙을 위해 의지할 곳이 복음밖에 없을까?
파스칼은 이에 대한 아리송한 해석을 내놓는다. 파스칼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과 소통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중개자 없이 믿는 자는 곧 이성과 너무 거리가 멀고 너무 복잡한 원리를 믿는 셈이기 때문에 금방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직접 조우하는 일은 너무 신비해서 오히려 믿음을 흐린다는 뜻으로 보인다.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전하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즉 성경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에피소드는 하나님의 조화를 인간화하는 작업이다.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하나님의 조화를 접해야만 신성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믿을 수 있는 차원으로 끌어내리기 이전에, 결국 믿기 위해 필요한 확실성을 배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이치일까? 우리는 기적을 바라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 신을 믿지도 않으며 싫어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삶에 아무런 이익을 주지 않는 신을 굳이 믿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파스칼의 해석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충성에서 비롯된 낙관주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