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굴복과 활용]

「팡세」 13장

by 루너

파스칼은 이성의 불완전함을 끝없이 지적한다. 이번에는 그런 이성을 극복할 대안으로, 본격적으로 믿음을 이성 너머로 연결시킨다.


확실히 인간이 자신을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한다면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견해일 것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아직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고, 자신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일관적이지 못한 부분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인간은 외면도 내면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파스칼은 이성의 최종 단계가 이성을 부인하는 단계라고 주장한다. "이성에 대한 부인만큼이나 이성에 합당한 일도 없다. 이성의 최후 단계는 이성을 초월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면 이성은 나약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것과 이성으로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회의할 때 회의할 줄 알아야 하고, 확신할 때 확신할 줄 알아야 하며, 굴복할 때 굴복할 줄 알아야 한다." 파스칼은 이성 너머로 우리를 인도할 믿음에 기대 보라고 끝없이 권한다. 아마 본인이 체험한 신비로운 기적들에 의거한 것이리라.


다만 이성의 한계선이 결국 정해져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마땅치 않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성 너머로 이성을 확장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예를 들어, 먼 옛날에는 신비하게 보이던 천체의 운동은 성경과 맞물려 천동설이라는 틀린 이론을 낳았다. 이제 기초 교육만 받은 인간도 지동설쯤은 안다. 이런 발달은 이성이 이끈다. 믿음으로 어물쩍 넘어가지 않고 이성을 끝까지 활용했기 때문에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발견할 수 있는 진리들에도 한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그 한계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이성을 최대한 활용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성이야말로 신의 선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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