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 21장
세상의 주요 종교들을 보면 참 수명이 길다. 고대로부터 전승되는 힌두교와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도 예수가 나타난 이래로 흔들림은 잦았지만 결코 사라진 적은 없다. 구약의 이야기를 믿는다면 그보다 더 오래됐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종교는 항상 지상에 존재해 왔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이 종교는 지속되었고, 이 종교에 의해 모든 것이 존재한다."
종교의 수명은 대체로 국가들의 수명보다 길다. 예수가 나타났을 때 발판이 되었던 로마 제국도 영원하지 못했다. 이천 년의 세월 간에 한반도 위의 나라가 몇 번이나 바뀌었던가. 종교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종교의 영속성은 경이로운 일이다.
파스칼은 이 영속성을 근거로 현세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종교에 귀의할 것을 제안한다. 나는 지나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오래간다는 사실은 놀랍기는 하지만 논리적으로 이롭지는 않다. 오히려 신도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수명을 지속한 측면도 있다. 마치 불나방들을 불태우며 수명을 이어가는 불꽃과도 같다.
하지만 영원의 신비가 주는 안정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고뇌는 멸망의 운명에서 나온다. 언젠가는 자신을 비롯해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이 사라질 것을 알기에, 불멸을 약속하며 스스로가 불멸하는 종교를 믿는 심리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아, 나의 하느님, 당신께서 약속하신 구원자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