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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너 Jun 07. 2024

[모세의 증거]

「팡세」 22장

창세기에는 엄청 오래 산 인물들이 나온다. 심지어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다. 왜 그들은 오래 살았으며, 왜 그 시대가 지나고 사람들은 100세를 간신히 바라보게 됐을까? 파스칼은 이에 대해 재밌는 해석을 내놓는다.


창세기의 장수하는 인물들이 나오던 시대는 사람들이 하느님 곁에서 살던 시대이다. 이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하느님과 이어져 있었으며, 에녹처럼 하느님의 맘에 들어 직접 데려간 사례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후세의 사람들은 하느님과 긴밀히 연결돼있지 않다. 오히려 하느님의 증거를 찾지 못해 믿지 않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파스칼은 이런 관계가 수명으로 비유됐다고 본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햇수의 길이가 아니라 다수의 세대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진실은 사람들이 바뀌면서 변질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있으면 그 사람의 믿음도 오래도록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찍 죽어 세대가 바뀌면 믿음은 희석된다. 하느님과의 거리, 즉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는 것을 수명과의 비례 관계로 비유했다는 것이 파스칼의 해석이다.


실제로 세상의 질서는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불교 국가인 고려도 멸망했고, 유교 국가인 조선도 멸망했다. 파스칼은 다른 것들을 제쳐 둘 수 있는 영원한 진리로 기독교를 믿었지만, 기독교는 더 이상 이 세계를 지배하지 않는다. 적어도 인간 세계 안에서 영원한 진리는 없다. 결국 영원히 기댈 곳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떠돌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가련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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