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 23장
파스칼은 사람에게 세 단계의 질서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는 몸의 질서이다. 감각에 의한 쾌락에 따르는 질서를 말한다. 몸의 질서는 탐욕과 방종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어서 신성한 것으로 치부되지는 못한다. 그다음 단계의 질서는 정신의 질서이다. 이성이 정신의 질서에 해당한다. 이때 우리는 감각이 아니라 원리와 증명에 의거해 판단을 내린다. 대신에 이성은 우리의 한계를 규정하기도 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를 가리기도 한다. 세 번째 단계, 즉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가 사랑의 질서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노고를 바친다.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기꺼이 피를 흘릴 수 있다니? 하지만 그런 단계는 실존한다. 작게는 연인들의 사랑, 크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가며 베푼 사랑을 예로 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 바울로는 정신의 질서가 아니라 사랑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라 낮추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존재가 곧 인간을 넘어선 존재를 증거한다. "사랑은 초자연적인 것이다." 사랑은 때때로 논리를 초월해 무모함의 영역으로 이끌기 때문에 오히려 정신보다 낮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성이 판단만 할 수 있다면 사랑은 행동을 할 수 있다. 정신은 세상을 바꿀 단초가 될 수 있지만, 사랑은 실제로 세상을 바꾼다. "모든 물체와 모든 정신 그리고 그것의 생산물은 사랑의 가장 작은 움직임의 가치도 없다. 그것은 무한히 높은 질서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