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를 대표하던 지성인들이 의외로 보수적인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플라톤은 국가의 의지에 국민이 어울리지 못하면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몽테뉴는 인종에 관해 굉장히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식인 문화마저 옹호해 주었으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발상으로 국가의 사상에서 벗어나는 개인들을 불쾌해했다. 파스칼은 이 둘의 의견과 상반되는 견해를 보인다. 어차피 세상이 따라야 할 일반적인 법칙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완전한 법칙을 따르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법칙이 있어야 한다. 이성이 나서지만 이성은 모든 감각에 굴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법칙은 없다."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관습은 나름의 이유 덕분에 유지된다. 그 이유는 보통 정의와 결부된다. 모두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믿는 관습이 버젓이 존재할 리가 없다. 하지만 정의의 개념과 정의를 보는 관점은 시대마다 다르다. 어떤 시대의 예절이 다른 시대의 결례가 된다. 요컨대 사람들은 관습을 정의롭다 생각해서 준수하지만 관습이 정의롭다는 근거는 결코 시대 바깥에서 찾을 수 없다.
시대에 무관한 진리가 하나 있기는 하다. "세상의 여왕은 힘이다. 여론이 아니다. 그런데 여론은 힘을 이용하는 여왕이다." 즉 여론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없이 유지된다. 여론의 내용이 변하기 때문에 세상은 변하지만, 여론의 힘은 변하지 않아서 세상의 유일한 섭리는 변치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매 시대 여론의 지지를 받아 집권한 규칙도 절대적이지는 못하다. 만약에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이 필요하다는 것이 진리라고 해보자. 그런데 이 진리를 따라 만든 규칙은 고귀한 통치뿐만 아니라 강력한 압제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압제에 걸리지 않도록 규칙을 통해 사람들을 해방하면 도리어 시대가 무절제로 빠질 위험이 있다. 결국 한계를 규정화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모든 규칙은 유명무실해질 운명을 타고난다. "그것의 한계를 정해야 할 것이다. 사물에는 한계가 없다. 법률이 그것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정신은 그것을 허용할 수 없다."
결국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파스칼의 결론이다. 시대상이 정의롭다고 믿고 있다면, 그냥 그대로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때리지 못하는 규칙에는 크게 얽매이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시간이 나에게 길게 느껴진다거나, 내가 아무렇게나 판단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에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내가 나의 시계로 판단하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주도권을 자신에게 준다고 해서,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극단적인 정신은 여론의 힘에 눌려 죽을 운명이다. 여론을 벗어나려는 것은 인간성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인간 정신의 위대함은 그 자리를 지킬 줄 아는 데 있다. 위대함이 거기서 나온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 위대함은 거기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 데 있다." 인간성을 지키고자 한다면 여론을 무턱대고 거스르는 것보다 당장 옳은 것을 따르는 쪽이 현명하다. "중용만큼 좋은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