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아니면 악할까? 익히 알려졌듯 동양에서는 성선설의 맹자와 성악설의 순자와 성무선악설의 고자가 대립했고 유의미한 결론은 생기지 않았다. 서양도 사정은 마찬가지인데, 파스칼은 굳이 따지면 성악설을 믿었던 것 같다.
파스칼은 자아가 있는 한 인간은 딜레마에 빠진다고 생각했다. "자아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스스로 모든 것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부당하고, 다른 사람들을 예속시키고자 하니까 타인들에게는 불편하다. 왜냐하면 자아는 적이며 모든 다른 자아의 압제자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아의 불편함은 제거하지만 부당함까지는 제거하지 못한다." 자아가 있다는 말은 곧 판단에 '중점'이 있다는 뜻이며, 그 중점은 대개 자기 자신이다. 자아가 있는 인간에게는 다른 의지를 복속시키고 자신에게 합당한 것을 요구하려는 성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자아는 물론 인간성의 원천이다. 자아 없이 주변의 말을 따르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아가 인간에게 일으키는 복잡한 문제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인간이 정념 없이 이성만 있었다면. 인간이 이성 없이 정념만 있었다면. 그런데 이 둘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와의 싸움으로만 다른 하나와 평화를 얻을 수 있어서 싸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분열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반항한다."
세상에 모순이 많은 것은 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본질에서 기원한 문제이다. "어떤 것도 탐욕만큼 사랑과 비슷한 것이 없고 또한 그와 반대되는 것도 없다." "회의주의자, 스토아학파, 불신자 등등 그들의 모든 원칙은 참이다. 하지만 그들의 결론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정반대의 원칙도 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이렇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용을 써야 할까? 그렇게 하기로 한다면, 과연 양쪽 중 어느 쪽을 골라야만 할까? 자아를 제거해야 할까, 아니면 철저히 자아를 관철해야 할까? 양쪽 다 치우쳐서 이득이 될 것은 없다. "일체로 귀착되지 않는 다수는 혼란이고, 다수에 의지하지 않는 일체는 폭정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순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순간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것일 테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행하되, 자신이 품은 믿음이 영원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늘 열린 자세로 다음 시간을 기다리는 태도가 가장 이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