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주된 관심사는 삶 그 자체이다. 나는 삶이란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며, 삶의 종지부인 죽음이 오기까지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가? 삶으로부터 나는 무엇을 바라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요즘 나의 머릿속을 해집고 있다. 이런 질문들은 결코 혼자서 답을 내릴 수 없다. 체험이 적은 내가 직접 내린 답은 독단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럴 때일수록 현인에게 기대고자 고전을 파고들게 되는데, 이번에 선택한 「에세」는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탐구들 중 으뜸으로 평가받는 수작으로 알려져 있다.
「에세」의 첫 문장은 이것이다. "독자여, 여기 이 책은 진솔하게 쓴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것이다. 나는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창작된 전기(傳記)가 아니라 고백을 읽고 싶은 것이다. 이 사람이 실제로 있던 어떤 사건으로부터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일관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생각을 뇌에 심고 그것대로만 사는 사람은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갖가지 모순이 발견되는 가운데 그 생각의 주체가 '나' 한 사람뿐인 기록을 나는 원해왔다. 「에세」는 그런 기록의 모범으로 여겨지는 만큼 내 욕구를 충족시켜주리라고 생각한다.
몽테뉴 본인은 "나 자신이 내 책의 재료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경박하고 헛된 주제에 그대의 한가한 시간을 쓰는 것은 당치 않다."라면서 독자를 밀어내려 한다. 확실히 몽테뉴의 삶과 내 삶은 별개의 것이다. 시대가 크게 다르니 우리가 겪는 사건과 생각 또한 크게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건들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인간적인'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예전과 비교해서 인류는 크게 발전해 왔지만 여전히 야만스러운 일을 벌이기 때문이다. 역사 전체를 봐도 인류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이다. 다른 생물과 비교해서 특별한 능력, 특히 이성을 갖췄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면서도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감정의 노예가 되어 죄를 저지르고는 한다. 이런 인간적인 특질이 변하지 않은 이상 나는 몽테뉴의 삶을 관찰하며 배울 것을 추출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좋은 대화를 나눌 것이다.
「에세」는 무려 107개의 수상(隨想)으로 구상돼있다. 이 방대한 글을 하루빨리 읽으며 생각을 섭취하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천천히 읽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려 한다. 몽테뉴의 생각을 음미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감상을 여기에 적고자 하니, 내가 쓸 글은 '「에세」에 관한 새로운 「에세」'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몽테뉴가 「에세」를 진솔하게 써주었듯이 나도 피어오르는 내 생각을 진솔하게 쓰고자 한다. 몽테뉴가 범접할 수 없는 현인이라고 해서 몽테뉴와 내 견해에 차이가 발견됐을 때 그것을 묻어두지 않겠다. 그것이야말로 몽테뉴가 「에세」를 쓸 때 취한 자세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