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1
"우리 때문에 비위가 상해 화가 치민 사람들이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 우리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의 마음을 눅이기 위한 제일 흔한 방법은 고분고분한 태도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비와 연민을 끌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방법인 당당함과 꿋꿋함을 통해서도 때로 동일한 효과를 얻기도 한다."
「에세」의 첫 글에서 몽테뉴는 역사를 고찰한다. 그는 어떤 공격에 대해 순응하지 않고 저항한 결과 오히려 용서받은 사람들을 언급한다. 에드워드 흑태자에 맞선 세 명의 프랑스 귀족, 스칸데르베그에게 맞선 부하, 겔프를 어깨에 올릴 생각을 한 담대한 귀족 여인들. 나도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그 기개가 놀라워서 상대가 나였어도 감화됐을 것 같다.
그런데 몽테뉴가 초점을 둔 것은 그 기개 자체가 아니라 기개가 가져온 효과인 듯하다.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과 존경심을 유발하는 것이 비슷한 결말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몽테뉴는 동정심은 마음이 약하고 유순한 사람들에게 좋은 전략이고 존경심은 강력하고 완강한 사람들에게 좋은 전략이라는 규칙을 제시한다. 상대의 기질에 따라 좋은 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인 규칙은 아니다. 결국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상대방이다. 유순하고 심약한 사람들이 놀라운 기개를 보자 감화되어 강한 마음을 가지게 된 사례도 있고, 반대로 덕성을 보였는데도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사례도 충분히 있다. 특히 '강함'의 상징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상대가 담담한 태도를 보이자 오히려 부아가 나서 잔혹하게 대응했다.
몽테뉴가 규칙을 제시하고 스스로 반례를 제시한 것은 결국 이 말을 하기 위함인 것 같다. "확실히 인간이란 놀라우리만치 헛되고 가지가지이며 물결치듯 변화하는 존재이다. 인간에 대해 변함없이 일관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인간사에 대해 내린 귀납적인 법칙은 늘 부서지기 마련이고, 최후의 최후까지 남는 것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라는 하나의 절대적인 법칙인 것이다.
나도 몽테뉴만큼 관록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몽테뉴의 말을 검토할 자격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더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상대로 움직이는 전형적인 사람이 있고, 예측을 불허하는 독특한 사람이 있다. '인간 전체'를 규정지으려고 하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범위를 '개인'으로 좁히면 문제 될 것이 없다. 비범한 알렉산드로스는 그 일화까지 비범할 뿐이며, 폼페이우스는 (범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정도 기인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몽테뉴가 처음에 제시한 '전략 규칙' 또한 그 전제가 잘못됐다. 인간 전체를 규정할 수 없다면 인간을 분류하고 따로 규정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특히 심약한 사람이 동정심에 약하고 강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존경심에 약하다는 구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이분법은 너무 단순하다. 동정심과 존경심 모두 인간이 품고 있으며 인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감정이다. 물론 둘의 기여가 똑같지는 않을 것이고 각자 선호하는 쪽이 있겠지만, 그 비율이 절대적으로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다. 이 비율이야말로 개인마다 다르다. 심지어 개인에게서도 일관적이지 않고 그때그때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경우의 사람은 '변덕스럽다'라는 말을 들으며 좋은 취급을 못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몽테뉴가 "인간은 예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각자가 다르기 때문에 한 마디로 특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을 면밀히 관찰하다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존경심과 동정심 중 어느 쪽에 더 영향을 많이 받을까? 몽테뉴는 자신이 동정심에 약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는데, 나도 이런 부류인 것 같다. 당장 내 인생을 돌아봐도 나는 남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남을 보고 든 동정심에 기반하여 남을 도운 적이 더 많은 것 같다. 또 「에세」에 나온 사례들에서 내가 상대의 목숨을 쥐고 있는 결정권자라면 공포에 굴하지 않는 사람이 더 무서워서 어떻게든 빨리 제거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