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생명과학을 정말 좋아해서 생명과학만 공부하다시피 했다. 대학에 가려면 물론 수학을 잘해야 한다. 내 목표는 생명과학 실력으로 수학 실력을 가리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수시를 준비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설계는 안타깝게도 틀어져갔다. 생명과학 실력으로 수상 실적을 쌓았지만 너무 실적이 커서 대학 입시에 오히려 쓰지 못했다. 수학 성적도 곤두박질쳐서 생명과학 성적으로 도무지 가릴 수 없는 것이 됐다. 6월 모의고사 때 받은 수학 점수가 아직도 기억난다. 54점이었고 5등급이었다. 모의 지원 사이트에 성적을 입력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도무지 목표한 수준의 대학에는 갈 수 없는 점수였다.
결단을 내렸다. 수학 목표를 1등급으로 하고 모든 것을 걸었다. 하루 종일 수학 문제만 붙들었다. 하루에 최소 100문제는 풀자고 목표를 정했다. 10월 모의고사까지도 뚜렷한 상승세가 보이지 않았다. 당시에 킬러 문제라 불리던 21, 29, 30번은 손도 못 댔다. 20번과 28번이나 잘 넘기면 다행이었다. 목표를 다시 정했다. 21, 29, 30 빼고 모든 문제를 다 맞춰서 2등급을 받기로 했다. 기출문제를 풀고, 똑같은 문제를 계속 풀었다. 21, 29, 30은 답안지를 베껴 썼다. 고득점 문제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방식 때문에 순수한 실력이 오르는 느낌은 잘 들지 않았다. 순수한 실력을 추구할 여유가 없다는 점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침내 수능을 보았다, 21, 29, 30번 빼고 다 맞춰서 수학은 88점으로 2등급을 얻었다.
이때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공부는 무조건 다회 반복이다. 자질이 없는 사람도 반복을 통해 따라잡을 수 있다." 끝까지 21, 29, 30번 문제에 손도 대지 못한 것은 분명 오점이어서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수능이 끝났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대학교에서 내가 좋아하는 강의만 수강하며 즐거운 반복을 해서 학점을 쌓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대학교에서 나는 고등학생 시절과 다를 바 없이 공부했다. 사실 고등학교 말엽에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타인에게 쓸 시간을 나에게 투자하자는 마음으로 많은 시간을 공부에 쏟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등학교 때 깨달은 방식을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고등학교 때는 잘 만들어진 문제가 학생들에게 끝없이 던져졌고, 학생들은 그것들을 풀며 성장해나가면 됐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책에 문제가 많이 실려 있어서 똑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전공으로 진입하는 2학년 때부터 발생했다. 수업 교재에도 문제가 실려있지 않고, 인터넷으로 구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문제풀이를 반복하지 않는 대신 교재를 반복해서 읽는 것으로 그럭저럭 버텼다.
한계는 계속 나를 졸라맸다. 우선 반복해서 읽는 일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이미 아는 얘기를 굳이 또 읽어야 한다니, 시간을 낭비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힘을 빼고 읽으면, 시험 때 꼭 내가 대충 읽은 부분을 분명히 설명하라는 식의 문제가 나와서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나는 문제를 보기 전까지 '이미 다 안다'라고 생각하던 것도 답안을 쓸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됐다. 더구나 대학 생활은 고등학교 생활과는 달리 아무런 규제가 없다. 공부가 지긋지긋할 때 내가 도망칠 곳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공부가 질리던 무렵 하루에 코인 노래방에 5000원은 기본으로 썼다. 요컨대, 반복은 공부를 질리게 하고, 공부에 질린 나는 공부에 전념할 힘을 잃었다.
내 평점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떨어졌다. 나는 해이함을 경계하자는 교훈을 얻고 공부에 골몰했다. 저번 학기에 배운 내용이 많이 나왔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읽었다. 머리에 들어오는 느낌이 도통 들지 않았다. 내가 '완벽한 앎'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교재에 있는 모든 부분이 시험에 나올 수 있다고 믿게 됐다. 교재의 모든 부분을 평등하게 꼼꼼히 읽었다. 기력이 빠르게 빠져나갔고, 공부는 힘든 것을 넘어서 역겨운 것이 됐다. 진지하게 나는 공부에 적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직 성적을 되찾자는 일념으로 수도승처럼 스스로를 괴롭혔다.
결과는 참혹했다. 오히려 성적은 더 떨어졌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내가 자멸하는 동안 다른 동기들은 서로 기출문제, 즉 '족보'를 공유해서 시험에 무엇이 나오는지 미리 알고 대비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한 공부도 헛되고 앞으로 할 공부도 헛되다는 비관에 잠겼다. 내가 하던 공부는 괴롭기만 하고 아무것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다. 예전에는 내심 한심하게 생각하던 벼락치기를, 그것도 대충 했다. 어차피 A+을 받을 사람들이 이미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대학 생활에 아무런 의미를 못 느끼고 시간을 허비하다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갔다.
지금 돌아봐도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부끄럽다. 인맥 탓을 하기엔 세상과 너무 동떨어져 살았고, 의지 탓을 하기엔 너무 괴로웠다. 나는 솔직히 전공을 배우면서 점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됐다. 완벽한 앎은 공부의 목표이자 불가능한 경지이다. 결국 시야가 좁아지게 될 것이라면 나는 무엇을 위해 전공을 고르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괴로운 공부를 해야 하는가.
하지만 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 말고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공부 말고 정점을 찍은 분야가 없다.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공부도 다시 좋아하게 될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아무 걱정 없이 나 자신만 믿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내 슬픈 과거를 해부해 보려 한다. 새로운 피를 수혈해서 새로운 활력을 얻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