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59
나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알코올 냄새가 싫다. 취한 사람의 추태를 보면 절대로 닮고 싶지 않다. 특히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여러 번 잡는 작자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한 번이라면 모르겠다만 두 번, 세 번까지 뉴스에 심심치 않게 나온다. 내게 술은 해악이다. 차라리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담배가 낫다.
몽테뉴는 주벽을 악덕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것으로 보았다. 순전히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술에 취해 이성을 잃는 것까지 좋게 본 것은 아니다. 몽테뉴는 "인간의 가장 나쁜 상태는 자기 인식과 자기 통제력을 잃었을 때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몽테뉴는 취기를 일상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유형의 쾌락으로 보며 긍정한다. 몽테뉴가 존경하는 선현들도 술을 마셨고 나아가 음주를 권장했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나는 「에세 1」의 몽테뉴가 은근히 보수적인 인물로 보였다. 비록 식인종을 옹호하는 등 파격적인 견해를 피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이성의 판단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가 상식 밖의 경지, 예를 들어 소 카토의 자살과 잠을 숭배하는 것은 숭배 대상 못지 않게 광적으로 보였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에세 2」에서 몽테뉴는 훨씬 너그러워진 듯하다. 그는 술에 패배하지 않는 정신은 없고, 나아가 굴복하는 법이 없는 정신은 숭고함을 넘어 괴기하게 보인다고 인정한다. 저번 글에서 사람의 일관성을 논한 것도 자신의 생각에 변화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였던 것은 아닐까? 내 추측이 옳다면, 나는 몽테뉴의 변화가 마음에 든다. 훨씬 더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목을 빳빳이 치켜세운 철학자가 아니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친구를 보는 느낌이 든다.
물론 몽테뉴의 옹호와는 별개로 나는 모든 형태의 음주가 싫다. 이 생각은 고치지 못하겠다. 몽테뉴도 "우리 고유의 판단력과 이성을 뛰어넘는 모든 열광은 그것이 아무리 상찬할 만한 것일지언정 광기라고 불러 마땅하다."라고 말하면서도 "지혜란 우리 영혼을 흐트러짐 없이 관리하는 것이요, 절도 있고 조화롭게 이끌며 주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광기에 이르기 전까지의 지혜라면 분명 누구나 얻을 수 있고 누구나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금주가 광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앞으로도 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