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지탄함

「에세」 78

by 루너

감기에 걸렸다. 요즘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루에 4km 정도를 걷는데, 어제는 긴 패딩을 입고 땀을 많이 흘린 탓에 땀이 식어서 감기로 번진 것 같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집에서 늘어지게 자다가 이제야 책을 폈다. 책을 펴자마자 보이는 글이 이 「게으름을 지탄함」이니, 제목부터 오늘의 내 심기를 건드린다.


본문에는 몸이 안 좋아 죽을 고비에 있는데도 끝까지 소임을 다 한 사람들의 열전이 나온다.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에 등장한 율리아누스 황제가 다시 등장하여 "철학자와 대장부는 숨만 쉬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전한다. 중대한 책임을 맡은 왕은 몸 져 누울 여유가 없다. 목숨을 깎는 한이 있더라도 아랫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직접 내리고 실천해야 한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내가 지금 감기에 걸려서 괜히 이 글을 읽고 심기가 불편해진 탓도 있겠지만, 건강했어도 지금 하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품었을 것 같다. 왕은 막중한 책임을 가진 만큼 함부로 몸을 놀려서도 안 된다. 일관성 있는 지휘를 위해서는 일단 목숨을 보전하고 정신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결국 왕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이 만든 결과이지 왕이 가진 기개가 아니다.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에서 율리아누스가 결국 배교자라고 비판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에 전혀 본받을 것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목숨이라면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당하다. 평온한 영혼은 다가오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이 다가오기 직전까지 걸을 자유로운 삶의 행보를 염두에 둔다. 몽테뉴가 그리도 존경하는 소 카토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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